臺, 10년만에 日 식품수입 빗장 풀어… CPTPP 가입 위해 양보4월 신청 韓, 대선에 입장정리 '아직'… 해수부는 "수입규제 완화 NO"통상전문가 "30개월미만 美쇠고기 수입처럼 국민 설득할 절충안 관건""국민 식품안전 원칙하에 밀실·이면합의 안돼… 차기정부가 풀 숙제"
  • ▲ 수출용 컨테이너.ⓒ연합뉴스
    ▲ 수출용 컨테이너.ⓒ연합뉴스
    대만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위해 10년간 수입을 금지하던 일본 후쿠시마(福島) 일대 식품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일본은 대만의 전례를 들어 한국에도 수입금지 조처를 풀라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해양수산부는 후쿠시마 인근 8개 현(縣)의 수산물 수입금지와 CPTPP 가입은 별개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통상전문가는 정부가 CPTPP 가입을 사실상 개시한 만큼 차기정부에서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절충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관건이 될 거라고 내다봤다.

    ◇臺, CPTPP 가입 위해 양보…전량 통관검사 조건

    대만정부는 지난 8일 덩전중(鄧振中) 무역협상판공실 대표 등 장관급 당국자 5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후쿠시마 일대 5개현 식품수입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수입금지 조처를 내린지 10년 만에 빗장을 푼 셈이다. 대신 대만정부는 후쿠시마 일대 5개현에서 수입되는 식품 전량을 대상으로 통관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위험요인이 있다고 판단하는 상품에 대해 방사선 검사 결과와 산지 증명서를 요구하기로 했다.

    이날 뤄빙청(羅秉成) 대만정부 대변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이후 이미 10년이 지나면서 세계 각국이 속속 후쿠시마 주변 식품 관련 제한조치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만정부가 야당의 강한 반발에도 후쿠시마산 식품수입을 허용하는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CPTPP 가입이 있다는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CPTPP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이 탈퇴하자 일본·호주·멕시코 등 나머지 11개국이 2018년말 출범시킨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11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가입을 결정하는 가운데 일본이 핵심 구성원으로 참여중이다.

    독립 추구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장기적으로 대만의 대(對)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과 CPTPP 가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대만은 지난해 9월 CPTPP 가입을 신청했고 일본은 대만측에 후쿠시마 식품 수입 허용을 강력히 요청해 왔다.
  • ▲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수산물 수입 반대 기자회견.ⓒ연합뉴스
    ▲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수산물 수입 반대 기자회견.ⓒ연합뉴스
    ◇해수부 "수입금지, CPTPP 가입과 무관"

    문제는 일본이 대만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에도 CPTPP 가입을 전제로 수입금지 조처를 풀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부터 사실상 CPTPP 가입에 착수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월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정부는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하고자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과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관련 절차를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수산물 수입금지 조처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입장이 정해진 것은 없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아직 대외경제장관회의 일정 등이 잡힌 게 없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내용에서 추가로 진전된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당국(산업통상자원부)에서 가입 관련 공청회를 연다면 신호가 될 수 있으나 아직 정부내 정해진 게 없다"고 덧붙였다.

    해수부는 일단 CPTPP 가입과 일본 수산물 수입 규제 해제는 별개 문제라는 견해다. 문성혁 해수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CPTPP 가입을 위해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를 완화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는 국민 건강을 위한 조치로 한국정부는 CPTPP 가입과 연계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 ▲ 수출.ⓒ연합뉴스
    ▲ 수출.ⓒ연합뉴스
    ◇5억명 거대시장…"역사문제와 구별해야"

    통상전문가는 생각이 다르다. 정부가 CPTPP 가입에 착수한 만큼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의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CPTPP 가입은 만장일치제여서) 일본 수산물 수입금지는 어떤 형태로 풀지, 국민여론은 어떻게 형성될지가 관건"이라며 "이 사안이 과거 광우병사태 만큼의 파급효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유사한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같은) 전면금지는 아니더라도, 광우병 사태 때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은 허용하는 식의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밀실에서 이면합의로 국민의 식품안전은 내팽개치고 일본의 요구에 굴욕적으로 끌려간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선 안된다"면서 "(국민 안전에 대한) 분명한 원칙하에 국민에게 설득될 수준의 절충안으로 CPTPP 가입이 왜 필요한지를 홍보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상전문가는 이 숙제는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한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12월27일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내년 4월쯤 (CPTPP) 가입신청서를 낸다는 목표"라고 밝혔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1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르면 다음달쯤 가입신청서를 내려고 준비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통상전문가는 "대선을 앞두고 정부도 정치권도 지금 이 문제를 꺼내기엔 시기상 부적절하다.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누구도 원치않을 것"이라면서 "무역관계에 있어 (한일 양국간) 역사 문제와는 분명히 구별해서 접근해야지 연계되면 답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CPTPP 미래와 우리의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 CPTPP 참여 11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세계 GDP의 12.8%인 11조2000억 달러, 무역 규모는 전세계 무역액의 15.2%인 5조7000억 달러에 달한다. CPTPP에 참여하면 전세계 인구의 6.6%에 해당하는 5억여명의 거대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대외·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가입이 불가피한 시장이다. CPTPP 회원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23.2%를 차지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내놓은 KDI 포커스 '바이든 시대 국제통상환경과 한국의 대응전략'에서 "CPTPP 가입은 (한국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시장을 다변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라며 "CPTPP에서 배제될 경우 누적원산지를 적용받지 못해 한국 중간재 수출에 중장기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일본과의 무역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CPTPP는 회원국에서 생산된 어떤 중간재도 CPTPP 수출국의 자국 생산품으로 인정하는 누적원산지 제도를 채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