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항로 운임담합 선사는 시정명령만 부과 최저운임 등 담합하고 상호감시…대기업 화주에 보복도 공정위 "해운법상 공동행위 아냐…제도개선 추진"
  •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17년간 한·일 항로에서 운임을 담합하고 삼성 등 대기업 화주에게도 인상된 운임을 강요하며 보복을 한 선사들이 과징금 800억원을 부과받았다. 한·중 항로에서 운임을 담합한 선사들은 그 이득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시정명령만 받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한·일 항로에서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총 76차례 운임을 합의한 15개 선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800억원을 부과하고, 한·중 항로에서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총 68차례 운임을 합의한 27개 선사에 대해 시정명령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담합한 운임 준수를 독려한 한·일 항로의 사업자단체인 한국근해수송협의회(한근협)은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으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억4400만원이 부과되고 한·중 항로 사업자단체인 황해정기선사협의회(황정협)은 시정명령만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고려해운, 남성해운, 흥아해운 등 주요 선사 사장들은 지난 2003년 10월 한·일, 한·중, 한·동남아 등 3개 항로에서 기본운임 인상을 하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했고 장기간 최저운임을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 

    선사들은 운임 인상 및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긴급유류할증료(EBS)와 터미널 조작 수수료(THC) 등 다양한 부대비용의 신규 도입 및 인상을 합의하고 이를 실행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선사들은 대형화주들의 입찰이 이뤄지는 시기를 전후로 회합 및 이메일 등을 통해 대형화주 등에 대한 투찰가격을 합의했다. 투찰가격은 통상 선사들이 합의한 최저운임의 연장선상에서 결정됐으며 선사들은 담합을 숨기고자 합의 운임에서 10달러를 높여 투찰하고 낙찰된 선사 이외에는 화물 선적을 금지하기도 했다. 
  • ▲ 한일 사장단 회의(2004년 2월17일) 자료 및 한일항로 시황(2005년 6월23일) ⓒ공정위
    ▲ 한일 사장단 회의(2004년 2월17일) 자료 및 한일항로 시황(2005년 6월23일) ⓒ공정위
    일례로 한·일 항로에서 선사들은 합의 실행으로 2008년 한 해에만 비용절감으로 120억원, 추가 부대비 징수로 500억원을 벌어들이는 등 총 620억원의 수익을 달성했다. 

    선사들은 담합 합의 이후, 선사 간 협의체인 한근협‧황정협에 합의 위반 선사를 제보하는 등 상호 감시했다. 

    해운동맹이 지배하는 정기항로에 끼여드는 동맹 외 회사의 선박인 이른바 '맹외선'을 이용하는 화주에 대해선 선복을 미제공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어기는 선사에게 1TEU당 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합의된 운임을 위반한 선사는 6개월간 선복 제공을 중단하는 페널티도 수립했다.

    이후 국적선사들은 동남아, 중국, 일본 등 3개 항로의 운임 합의 실행 여부를 보다 치밀하게 감시할 목적으로 2016년 7월 3개 항로 합동 중립위원회를 설치했다. 중립위원회는 2016~2018년 기간 중 총 7차례 운임감사를 실시해 한·일 항로에서 합의 위반 선사들에게는 총 2억8000만원의 벌과금 부과했다. 한·중 항로에서 합의 위반 선사들에게는 총 8000만원의 벌과금을 부과했다. 

    선사들은 중소‧중견기업 뿐만 아니라 삼성, LG,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 화주들에 대해서도, 이들이 운임을 수용하겠다는 것을 서면으로 제출할 때까지 선적을 거부하는 등 합의된 운임인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화주에 대한 보복도 감행했다. 
  • ▲ 2003년 11월21일 회의록. 해당 회의록에는 LG와 삼성, 현대-기아차 운임회복과 관련한 조치들이 담겨 있다. ⓒ공정위
    ▲ 2003년 11월21일 회의록. 해당 회의록에는 LG와 삼성, 현대-기아차 운임회복과 관련한 조치들이 담겨 있다. ⓒ공정위
    선사들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한근협 또는 황정협 소속 선사들 간 공동행위가 아닌 개별선사 자체 판단으로 운임을 결정하였다고 알렸고, 담합으로 의심을 사지 않도록 운임인상 금액은 1000원, 시행일은 2~3일 정도 차이를 두기도 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판단에 선사들은 해운법에도 정기선사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공정위는 선사들이 해운법에 따른 공동행위와는 전혀 다른 담합을 했기 때문에 제재대상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정위는 해운법에 따른 공동행위가 되기 위해선 30일 이내에 해수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하고, 신고 전에 합의된 운송조건에 대해 화주 단체와 협의해야하며 부당한 운임 인상으로 경쟁이 제한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선사들은 해운법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지키지 않은 절차적 문제 뿐만 아니라 화주에 대한 보복, 합의를 위반한 선사에 대한 각종 페널티 부과 등은 불법적인 공동행위로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한·일 항로 15개 선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800억원을, 한·중 항로 27개 선사에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한·일 항로 선상만 과징금을 부과한 것에 대해 공정위는 한·중 항로는 양국 정부가 해운협정에 따라 선박투입량 등을 오랜 기간 관리해온 시장으로, 공급물량 등이 이미 결정돼 운임합의에 따른 선사들의 이득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업자별 과징금 부과내역은 ▲흥아라인 157억7500만원 ▲고려해운 146억1200만원 ▲장금상선 120억300만원 ▲남성해운 108억3600만원 ▲동진상선 61억4100만원 ▲천경해운 54억5600만원 ▲동영해운 41억2800만원 ▲범주해운 32억8800만원 ▲팬스타라인 32억5600만원 ▲팬오션 25억3700만원 ▲태영상선 17억7100만원 ▲SITC 1억2700만원 ▲에스엠상선 1억900만원 ▲에이치엠엠 4900만원 등이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이번 조치는 지난 1월 한·동남아 항로에서의 운임담합 행위를 제재한데 이어, 한·일, 한·중 항로에서 17년간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운임 담합 행위를 제재한 것"이라며 "앞으로 해운당국의 공동행위 관리가 강화돼 수출입 화주들의 피해가 예방될 수 있도록, 해수부와 긴밀히 협력해 관련 제도개선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