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대치로 예산정국 답보…"與 긴축 vs 野 증액"민주당 "민생예산 확충"… 국민의힘 "대선 불복·정권 발목 잡기"증액 불 보듯… 전문가 "팬데믹 이전보다 이미 14.5% 증가 수준"
  • 예산 처리.ⓒ연합뉴스
    ▲ 예산 처리.ⓒ연합뉴스
    내년도 예산안 법정 처리기한이 16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 대치로 난항이 예상되면서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진정한 의미에서 긴축이라 부르기 어렵다는 견해인 가운데 거야(巨野)가 증액을 벼르고 있어 재정건전성 확보가 녹록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 법정 처리기한은 12월2일까지다. 문제는 여야가 예산안을 두고 이렇다 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예산 확충을 강조하며 윤석열 정부 예산안을 현미경 심사한다는 방침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열린 정책 의총에서 "윤석열 정부 예산은 긴축 재정이 기조라는 데 모순"이라며 "대통령실 입맛에 맞는 예산은 흥청망청 편성하고 민생만 긴축인 예산"이라고 날을 세웠다. 박 원내대표는 "혈세 낭비 예산은 대폭 삭감하고 대신 경로당 냉난방비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 지역사랑상품권 등 민생예산은 확충하고 있다"면서 "청년일자리나 소상공인 예산, 취약 차주에 대한 금융지원 예산 등도 대폭 증액해 내년도 예산을 민생 안정, 위기 극복 예산으로 만들겠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수적 우세를 이용해 예산을 증액하고 나섰다. 지난 9일 열린 국회행정안전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7050억여원을 전액 되살린 게 대표적이다.

    정부가 24조원 규모의 역대급 지출구조조정안을 내놓은 가운데 삭감한 공공일자리 예산도 다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15일 기획재정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한병도 의원에게 제출한 '주요 지출 재구조화 사업' 자료를 보면 내년 예산안 중 공공형 노인일자리 예산이 922억원 깎였다. 공공 주도 일자리 확대 대신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정부는 내년 공공일자리 사업을 54만7000개로 올해(60만8000개)보다 6만1000개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한발 빼는 모습을 연출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7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현장에서 연로하신 분들이 단순 일자리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공공형 노인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기를 살려 민간 주도로 경제활력을 도모한다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도 오리무중이다. 민주당은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부자 감세라며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에 반대하고 있다.

    여당은 민주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예산·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당이 예산을 가지고 새 정부가 일을 못 하도록 막고 있다"면서 "2주밖에 남지 않은 예산 통과가 법정 기한에 될지 심히 우려된다"고 했다. 이어 "오로지 대선 불복, 정권 발목 잡기에 치중하는 민주당의 몽니는 다음 총선에서 국민들이 엄중히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준예산 편성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준예산 편성을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국회가 합리적인 결정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이 새 정부의 예산안 칼질에 나서는 가운데 정부가 준예산 편성에 거리를 두면서 일각에선 정부·여당이 일정 부분 민주당의 입맛대로 예산 증액을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럴 경우 건전 재정을 내세웠던 새 정부의 긴축 기조가 흔들릴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국회에 낸 예산안 자체가 긴축 예산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하다는 견해여서 여야 협상 과정에서 예산 규모가 커질 경우 적잖은 후폭풍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정부의 예산안에 대해 "직전 문재인 정부에서 과도하게 지출을 늘린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재정이 지나치게 팽창한 상태다. 설상가상 현 정부도 집권하자마자 2차 추가경정예산으로 39조원을 썼다"면서 "지출예산 증가율은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예산안을 발표하며 올해 본예산(607조7000억원)과 비교해 5.2%(31조3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안을 코로나19 이전에 세운 2020년 본예산(558조원)과 비교하면 지출액 증가율은 14.5%에 달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5%대 예산 증가율도 낮은 수준이 아니다. 최근 몇년새 재정이 급속히 팽창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