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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은 왜 '삐뚤빼뚤' 이상한 글꼴을 만들까요?"… 우아한형제들 한명수 CCO

배민, 2012년부터 한글날 기념해 제작한 자체 글꼴 무료 배포'남과 다름' 강조한 배민만의 크리에이티브 녹아있는 글꼴로 차별화 성공"쉽고 명확하고 위트있게… 뻔하지 않은 공공재 브랜드 꿈 꿔"

입력 2022-12-09 00:38 | 수정 2022-12-09 10:38

▲ 한명수 우아한형제들 크리에이티브부문장(CCO, Chief Creative Officer, 맨 앞)과 크리에이티브 부문 직원들(강민경, 전수빈, 강세영)이 '글림체' 인형을 들고 있다. ⓒ정상윤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시인의 '풀꽃'

지난 2012년, '삐뚤빼뚤' 어딘가 이상하면서도 묘하게 친근한 글꼴이 등장했다. 세련된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투박하고 촌스러운 글꼴의 등장을 모두 비웃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 글꼴은 길거리 간판과 음식점 메뉴판, TV 자막, 생활용품 등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풀꽃과 같은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브랜드브리프는 우아한형제들의 한명수 크리에이티브부문장(CCO, Chief Creative Officer)을 만나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의 글꼴에 담긴 철학과 브랜드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한명수 CCO는 "우리 회사의 목소리를 일관된 색깔로 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형식 중 하나로 글꼴을 제작하기 시작했다"며 "자체 글꼴을 가진 회사들은 많지만, 우리는 남들이 하지 못할 것만 같은 배민만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그렇게 길거리 간판에서 모티브를 얻어 울퉁불퉁하고 세련되지 않은 글꼴을 만들었고, 배민의 아이덴티티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0년 문을 연 '배민'은 2012년 한나체를 시작으로 주아체(2014년), 한나는열한살체·도현체(2015년), 연성체(2016년), 기랑해랑체(2017년), 한나체 Air·한나체 Pro(2018년), 을지로체(2019년), 을지로10년후체(2020년), 을지로오래오래체(2021년), 글림체(2022년)까지 매년 한글날을 즈음해 제작한 글꼴을 모두에게 무료로 배포해오고 있다.

글꼴이 배민의 사업적 성과나 비즈니스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배민의 정체성과 색이 깃든 글꼴이 널리 사용되면서 일상 곳곳을 파고든 브랜딩 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영향력과 문화적 가치를 지니게 됐다.

배민의 글꼴 프로젝트는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주인 김봉진 의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해 평소 글꼴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김 의장의 제안으로 배민 한나체가 탄생했으며, 지금까지도 매년 아이디어를 보태고 있다. 현재 김 의장의 스마트폰엔 길거리 간판을 찍은 수천장의 사진이 담겨 있다고 한다. 

▲ 한명수 우아한형제들 크리에이티브부문장. ⓒ정상윤 기자

한 CCO는 "10년 전 한나체가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촌스럽고 조형적이나 시각적으로도 비율이 잘 맞지 않는 이 글꼴을 누가 쓰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그러나 브랜드의 철학을 심는 대표이사의 뚝심으로 배민의 모든 메시지를 자체 글꼴로만 전달해 왔다. 이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과 소상공인, 방송사에서도 배민 글꼴을 쓰고 있다. 배민 글꼴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쁘지 않은 글꼴이 이처럼 널리 자리잡게 된 것은, 시간의 힘 때문"이라며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거리 간판 속 아마추어의 글씨체를 대담하게 가져 와 글꼴로 만들고, 시간으로 꾸준히 밀어붙였더니 사람들의 반응과 공감을 얻게 됐다. 자주 보고 많이 보다 보니 익숙해지고 예뻐보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민의 못생긴 글꼴에는 남과 다름을 추구하는 배민만의 크리에이티브 DNA가 담겨있다"며 "많은 회사들이 차별화를 외치지만 이상해 보이거나 남과 완전히 다른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봐 온 익숙한 것을 비슷하게 만들어놓고 차별화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돼 편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한나체, 을지로체, 배민글림체, 기랑해랑체. ⓒ우아한형제들

배민이 올해 배포한 '글림체'는 '남과 다름'을 추구하는 배민만의 크리에이티비티가 빛을 발한 대표적 예다. 글과 그림을 합쳤다는 의미의 '글림체'는 일반 글꼴과 달리, 자음과 모음 그림 파일을 다운받아 원하는 방식으로 조합해 글자를 만들 수 있다. 배민 마스코트인 '배달이친구들'이 몸으로 한글을 표현한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배민 디자이너들이 손으로 직접 그려 완성했다.

한명수 CCO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똑같은 걸 반복하면 지루해진다. 올해는 기존과 완전히 다르게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어렸을 때 몸으로 글자를 만들며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한글과 그림을 합쳐 재밌는 글꼴을 만들고자 했다"고 '글림체'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그러나 '글림체'는 최종 단계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내부에서 디자인 작업을 마친 뒤 협력사인 산돌 측과 협의하던 중, '글림체'의 복잡성과 무거운 용량이 문제가 된 것이다. 현재 기술로는 '글림체'를 일반 글꼴처럼 다운로드 받아 컴퓨터에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일반 글꼴 파일로 만들려면 '글림체' 디자인을 단순화하고 대폭 변경해야만 했다.

한 CCO는 "위기의 순간, 세종대왕으로부터 용기를 얻었다"며 "컴퓨터가 없어도 글자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글림체'를 글꼴 파일로 접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완전 원형으로 바라봤다. 원형 글자 하나 하나를 조합해 글씨를 만들면 재밌는 놀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글꼴 파일을 만드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모음과 자음 수는 약 2500개다. 풀패키지로 만들려면 1만1000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글림체'는 한글의 유연한 속성에 배민의 크리에이티비티를 결합해 150자로 완성됐다.

그는 "ㄱ(기역)을 조금 돌리면 ㅅ(시옷)이 되고, ㅏ(아)를 돌리면 ㅗ(오), ㅓ(어)가 된다. 또한 ㅏ에 ㅇ(이응)을 합하면 ㅎ(히읗)을 만들 수 있고 ㅌ(티읕)은 알파벳 M으로 쓸 수도 있다"며 "사람들에게 글림체가 크리에이티브하고 재밌는 한글 놀이판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배민 '글림체'로 완성한 브랜드브리프 로고. ⓒ김수경 기자

한명수 CCO는 최근 제주도 올레 시장에서 배민 을지로체로 씌여진 간판을 단 한과집에 우연히 들렀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을지로체는 을지로 지역 간판 속 다섯 글자를 모티브로 만든 민중 디자인으로, 배민 글꼴 중 가장 널리 사용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멀리 제주도의 소상공인이 을지로체로 간판을 만든 것을 보니 우리가 글꼴 만들길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배민은 이제 국내 1위 음식 배달앱을 넘어 이커머스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배민의 커뮤니케이션은 배민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데 초점을 맞춰왔지만, 회사가 커짐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영역도 점차 확장되고 있다.

한 CCO는 "회사 창립때부터 지켜 온 '쉽고 명확하고 위트있게'라는 배민의 커뮤니케이션 기조 아래, 생기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며 "앞으로 글꼴 제작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 소상공인과의 상생, 라이더 문제, 원가절감 등 사회에 기여하고 사람들에게 쓸모있는 크리에이티브에 더욱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을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뻔하지 않은 공공재 브랜드'라는 지향점을 갖고, 사람들의 일상에 일조할 수 있는 배민만의 문화를 꾸준히 공유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 한명수 우아한형제들 크리에이티브부문장. ⓒ정상윤 기자

▲ 우아한형제들 더큰집(롯데타워 사무실)에는 배달의민족 글꼴을 활용해 제작한 간판이 걸려있다. ⓒ우아한형제들

김수경 기자 muse@newdaily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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