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만기도래 건설채 7600억원 규모…올해 총 1조8400억원대'AA-' 현대건설, 20개월만 회사채 1500억 발행…흥행보증 예약HL한라, 500억 발행에 140억만 주문…미매각 면했지만 시선싸늘 한신공영·신세계건설·GS건설 비우량채…PF-ABCP 금리하락 절실
  • ▲ 서울 성북구 한 재건축 현장. ⓒ성재용 기자
    ▲ 서울 성북구 한 재건축 현장. ⓒ성재용 기자
    부동산 경기침체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이 채권시장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 채권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몇몇 건설채도 수요예측 흥행에 성공하자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비우량 건설사 경우 이마저도 쉽지 않아 사모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현대건설(AA-, 1500억원)을 시작으로 건설채 수요예측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21일에는 한신공영(BBB, 500억원)과 신세계건설(A, 500억원)이, 22일에는 GS건설(A+, 1500억원) 수요예측이 진행될 예정이다.

    각사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면서 차환용 발행시기가 돌아온 까닭이다. 여기에 자금경색 사태로 위축됐던 회사채시장에 연초부터 현재까지 강세흐름이 이어지면서 건설채들도 분위기를 틈타 수요예측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이달부터 6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건설채중 AA와 A등급은 총 7600억원 규모다. 1월엔 없고 이달 2200억원을 시작으로 3월 1400억원, 4월 2000억원, 6월 2000억원이 예고돼 있다. 

    하반기에도 총 1조773억원어치 건설채 만기가 돌아온다. 9월이 약 4700억원으로 가장 많다. 건설채 연간 만기도래 액수는 모두 1조8400억원가량이다.

    통상 건설기업은 개발프로젝트용 사업비는 PF대출을 통해 마련하고 운영·운전·인건비 등 일반사업비는 회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사 입장에선 부동산PF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진 요즘 회사채 발행을 통해 현금을 확보, 유동성 대응이 필요하다. 주요 건자재생산에 필요한 원자재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우려로 주택시장 회복시기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주요금리가 하락하고 조단위 자금이 몰리는 자금조달시장에서 강세흐름이 확인되자 건설사들도 공모채시장에 발을 들이는 것 같다"며 "이달부터 기존에 발행한 회사채 만기가 돌아와 차환발행이 필요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곳은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2년물 700억원, 3년물 800억원 등 총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수요에 따라 3000억원까지 증액 가능성을 열어뒀다.

    올들어 대형건설사로선 첫번째 회사채인 데다 2021년 6월이후 20개월만에 발행하는 만큼 시장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시장반응 역시 나쁘지 않다. 현대건설은 업계서 최고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건설경기둔화와 원자재쇼크에도 매출 21조원을 기록, 전년대비 17.5% 늘어났다.

    문제는 비우량 건설사들이다. 앞서 중견건설사인 HL디앤아이한라(BBB+)는 5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40억원가량만 주문이 들어왔다. KDB산업은행에서 나머지 물량을 채워주면서 간신히 미매각은 면했지만 비우량 건설채에 대한 시장시선이 여전히 싸늘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SK에코플랜트(A-)도 비우량채지만 SK그룹계열 건설사라는 점이 흥행요인으로 작용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15일 진행된 수요예측에서 총 1000억원 모집에 5배가 넘는 5080억원을 끌어모았다. 흥행에 성공하면서 발행액을 2000억원으로 증액했다. 회사채 금리와 발행금액은 22일 결정돼 23일 발행한다.

    또다른 IB업계 관계자는 "SK에코플랜트나 현대건설과 같은 대기업계열 건설사는 든든한 뒷배 덕분에 리스크 대비 금리 매력도가 높아 투자수요가 몰리는 분위기"라며 "비교적 안전하면서 금리수준이 높은 채권에 대한 인기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건설외 다른 건설채들은 대부분 비우량채다. BBB급인 한신공영을 비롯해 신세계건설이나 GS건설 모두 A급 비우량채다.

    건설업계에서는 회사채 투자심리가 위축되면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와 같은 정부 지원사격이 사라지면 만기가 도래한 건설사들은 회사채 재발행이 아닌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건설채 경우 PF-자산유동화증권(ABCP) 금리하락과 같은 투자유인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 비우량 건설사 경우 공모채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수요예측 절차가 없는 사모채나 기업어음(CP) 등으로 긴급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공모시장에 나오더라도 제대로 수요를 확보하지 못해 인수단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태영건설은 이날 1000억원어치 2년만기 회사채를 7.80% 금리로 발행한다. 앞서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가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서 13%에 빌린 자금 4000억원을 수혈 받았다. 그룹차원 지원의지가 확인되면서 금리수준은 다소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은 금리로 자금조달을 이어가는 중이다. 

    앞서 이수건설은 17일 130억원 규모 6개월짜리 사모채를 발행했다. 발행금리는 투자자와 협의를 거쳐 9%로 결정됐다. 지난달 26일에도 1년만기 사모채 100억원을 금리 9%에 발행한 바 있다. 지난해 7월 6%대 사모채를 발행한 것에 비하면 반년만에 2.5%p이상 금리가 상승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부동산PF관리 등 부동산시장에 대한 정책대응이 주목된다. 지난달 중순 금융위원회는 5대금융지주, 국책은행, 금융공공기관 등과 부동산PF 점검회의를 통해 정상 PF사업장에 대한 5대은행 자금지원 PF대주단협의체 동, 국책은행 비주택PF 자금지원 등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건설채 만기 대비 차환이 34%밖에 되지 않았던 점과 최근 건설사 보유 현금성 자산이 지난해보다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건설채 만기도래에 따른 차환발행이 절실하다"면서도 "하지만 종목별 차별화로 발행자체가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근본적으로 건설사 보증 PF-ABCP 금리 안정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A등급 건설사 회사채 발행 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우량 건설사 보증 PF-ABCP 평균금리는 1월 기준 10%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말 강원도 레고랜드 ABCP 보증 채무불이행사태 직후 비우량 PF-ABCP 금리가 10% 전후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