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보조금 딜레마… 기술유출 우려 등 깐깐한 조건 논란디커플링에 中 반도체 굴기 박차 전망… 초격차 유지에 비상등野 반대에 K-칩스법 2월국회 처리 요원… 당정 "조속 입법" 논의
  • ▲ 반도체.ⓒ연합뉴스
    ▲ 반도체.ⓒ연합뉴스
    K-반도체가 미·중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 할 처지에 놓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에선 거대야당(巨野)의 어깃장에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 상향을 뼈대로 하는 일명 'K-칩스법'이 국회서 잠을 자는 실정이다. 당근이 없어 국내 유턴도 녹록잖은 셈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지난달 말(현지 시각) 자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보조금 지원을 위한 6가지 심사기준을 공개했다. 경제·안보 목적 달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심사기준이 공개되자 지원 조건이 너무 깐깐하고 일부 독소조항은 자칫 보조금을 빌미로 기업을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지원금을 받은 기업이 전망치를 웃도는 수익을 낼 경우 초과 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하도록 강제한 내용이나 사회공헌 심사기준에 포함된 연구·개발(R&D) 이니셔티브 참여가 자칫 기업의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원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 등 우려국에서 10년간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없고, 공동 R&D나 기술 라이선스를 진행할 경우 지원금을 전액 토해내게 한 것은 중국 내 생산시설을 확충한 우리 기업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에서 D램 생산량의 40% 이상을, 다롄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20%를 각각 생산 중이다. 미 상무부는 이달 중 세부적인 내용이 담긴 '대(對)중국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우리 기업으로선 신경 쓸 게 미국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 패권을 다투는 미국의 지속적인 반도체 디커플링(탈동조화) 시도 속에 중국이 반도체 굴기(堀起)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핵심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하는 가운데 중국은 4일부터 베이징에서 열리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올해 과학기술 관련 예산을 상당 부분 증액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작심하고 달려드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미국의 제재에 가로막혀 경쟁력 있는 제품을 제때 생산하지 못할 경우 시장을 지키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탈(脫)중국도 여의찮은 상태다.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에 보조금을 주는 배경에는 여러 노림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시아 생산공장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때보다 인건비 등으로 비용이 40% 이상 더 들기 때문에 이를 보조금으로 만회하려는 것이다. 외국기업의 생산기지를 국내로 옮겨오게 유도하는 온쇼어링 전략이다.
  • ▲ 수출 전략 민·당·정협의회.ⓒ연합뉴스
    ▲ 수출 전략 민·당·정협의회.ⓒ연합뉴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생산시설 국내 이전)마저 녹록잖은 게 현실이다. 미국이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을 펴며 2014년 340곳이던 리쇼어링 기업이 2021년 1844곳으로 대폭 늘어난 데 비해 우리나라는 2014년 해외진출기업복귀법 제정 이후 2021년까지 총 114개 기업이 국내로 복귀했을 뿐이다. 같은 기간 총 6839개 미국 기업이 자국으로 돌아간 것과 비교하면 1.6%에 불과하다.

    반도체의 경우 일명 'K-칩스법'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K-칩스법은 반도체와 배터리(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에 대한 대기업·중견기업 세액공제율을 현행 8%에서 15%,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각각 상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이다. 정부와 여당은 애초 2월 임시국회 내 K-칩스법 처리를 목표로 삼았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재벌대기업 특혜와 세수 감수를 이유로 반대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온쇼어링은커녕 우리 기업의 리쇼어링을 유도할 만한 당근조차 없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날 국회에서 '수출 전략 민·당·정 협의회'를 열고 복합 경제위기 속 수출 감소 위기에 대응하고자 머리를 맞댔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회의 후 브리핑에서 "당정은 반도체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설비 투자 촉진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며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K-칩스법의 조속 입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장비 수출 규제 등으로 우리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며 "(당은) 과도한 경영정보 공유, 초과 이익 요구 등 기업의 부담이 큰 조항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앞으로 국회 차원에서 대미 의원 외교에 적극 나서 우리 국익이 침해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협의회 모두발언에서 "반도체·자동차·철강은 통상환경 변화가 기업의 경영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게 주요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면서 "반도체(의 경우) 후공정 분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중 첨단 패키징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를 추진하고 정책금융 53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