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어 9월 위기설 여전한계차주 증가가 문제의 본질한은도 걱정… "금융안정 리스크 증가 불가피"
  • ▲ ⓒ한은. <2023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
    ▲ ⓒ한은. <2023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
    금융시장이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롭다. '4월 위기설'을 넘으니 '9월 위기설'이 대기 중이다. 9월 위기설까지 무사히 넘기면 드디어 평온해지는 걸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믿는 시장 참가자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지금 금융시장 상황은 대형 산불 진화 현장과 유사하다. '강원도 PF-ABCP'라는 큰불은 잡았지만 곳곳에 잔불이 남아 있다. 바람 한 번 불면 잔불이 다시 큰불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4월 위기설의 불씨는 부동산PF 부실이었다. 당국은 전 금융권이 참여하는 대주단 발족으로 대응했다. 9월 위기설의 불씨는 코로나19 대출 지원 종료다. 당국은 새출발기금 등 이미 마련한 대책이 잘 가동될 것이라며 '연착륙'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잔불 몇 개 밟아 껐다고 산불을 잡았다고 할 수 있을까. 비 내릴 기미는 안 보이는데 강풍까지 불고 있다면?

    사실 부동산PF 부실, 연체율 증가, 역전세 문제 등등은 병의 원인보다는 증상에 가깝다.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인상 때문에 촉발된 문제들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0.5%까지 내려갔던 기준금리가 1년 반만에 3.5%까지 치솟았다. 낮은 이자에 주식, 부동산, 코인에 쏠린 돈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상황이 됐다.

    단적인 예로 1년 전 2%대 금리로 부동산PF 자금을 구하던 대형 건설사들이 현재는 12% 안팎의 금리를 감내 중이다. 사업 완료 후 수익은커녕 손실 규모를 따져봐야 할 처지다. 이마저도 자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부채를 가진 차주라면 가계, 중소기업, 자영업자, 대기업 할 것 없이 모두 이자부담에 헉헉대고 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은행이 21일 내놓은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잘 집약돼 있다. 가계대출 연체율 상승, 기업여신 신용리스크 증대, 자영업자 연체가능성 증가, 전세보증금 미반환 리스크 증대, 제2금융권 부실채권 증대 등 나열된 잔불만 해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차주들이 대체로 원금과 이자를 잘 갚고 있다'며 위기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갚아 왔다고 앞으로도 잘 갚을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 아닐까. 급격한 금리인상의 주체인 한은은 다음과 같이 총평하고 있다.

    "가계, 기업 등 국내 경제주체들은 금리인상의 충격을 당초 우려보다는 잘 감내해 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높은 금리수준 지속으로 민간의 완충 여력이 줄어들고 있어 금융안정 리스크는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예상보다 잘 버틴 것 같은데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게 한은이 바라보는 시장의 모습이다. 금융위는 지난 8일 '만기연장·상환유예 연착륙 상황 점검회의'에서 약 40만명의 차주 가운데 1만명 정도만 문제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나머지 39만명의 차주들이 계속 원리금을 잘 갚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12%대 금리를 감내 중인 건설사 자금담당자의 말로 대신할까 한다.

    "대기업 브랜드 신뢰도도 있고, 업계 평판도 무시 못해서 적자가 예상돼도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디폴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돈 벌어서 금융기관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인데 계속 그럴 순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