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단독 상속 권리 없으나 제척기간 지나"
  • ▲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정상윤 기자
    ▲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정상윤 기자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누나 이재훈씨를 상대한 4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1년 8개월만에 승소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판사 손승온)는 최근 이재훈씨가 이 전 회장에게 400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손해배상금은 이 전 회장이 지난 2010년 누나 재훈씨에게 맡겼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채권의 액면 금액이다.

    해당 채권은 두 사람의 아버지이자 선대 회장인 고(故) 이임용씨가 차명으로 갖고 있던 채권이었다. 이들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로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채권이라고 다퉜다.

    이임용 선대회장은 지난 1996년 '딸들을 빼고 아내와 아들들에게만 재산을 주되, 나머지 재산이 있으면 유언 집행자인 이기화 사장(이호진 전 회장의 외삼촌·2019년 작고)의 뜻에 따라 처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임용 선대회장이 이기화 사장에게 남긴 '나머지 재산'은 선대회장 사망 이후 10여 년 뒤인 지난 2007년 검찰의 비자금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상속세 신고과정에서 누락된 차명 채권과 주식 등이 발견됐는데, 이는 이 전 회장이 단독으로 처분했거나 자신의 명의로 실명 전환한 것들이었다.

    이에 따라 이 전 회장은 2019년 6월 횡령 등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번 재판은 이 전 회장이 복역중이던 2020년 3월 제기한 소송으로 이 전 회장은 선대회장의 유언에 따라 채권을 단독 상속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전 회장은 "딸들에게 재산을 남기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남매들과의 분란이나 경영권 분쟁 방지를 위해 표면적으로 엇비슷해 보여야 했다"며 "차명재산은 '나머지 재산'이라는 형태로 외삼촌(이기화 사장)으로 하여금 나에게 집중시키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누나 이재훈씨는 "유언은 무효이며, 채권은 동생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내가 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유언은 무효지만, 채권은 이 전 회장의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유언 내용의 결정을 유언집행자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위임하는 것은 유언의 일신전속성(특정인에게 귀속되고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 반하므로 '나머지 재산' 유언 부분은 무효다"고 설명했다.

    다만, 상속 개시 이후 이 전 회장이 채권을 실질적으로 점유·관리해 왔으며 다른 상속인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인 10년이 이미 훌쩍 지난 점을 들어 "유언의 효력 유무와 관계없이 이 전 회장이 채권에 대한 단독 상속인으로서 온전한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