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위원장 "금산분리 완화" 흐지부지'금리인상 부작용' 대책에 우선 순위 밀려'은행 과점깨기'도 제자리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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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위.
    "윤석열 정부의 금융혁신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금융권 인사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금융개혁이 공공, 교육, 노동과 함께 4대 개혁 중 하나로 채택돼 큰 성과를 거뒀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핀테크 활성화 등 대표적인 개혁상품이 있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그런 게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취임 당시만 해도 금융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개혁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우리 금융회사들의 혁신을 지연시키는 규제가 무엇인지, 해외 및 빅테크 등과 불합리한 규제 차이는 없는지 살피겠다"며 "불필요하거나 차별받는 부분은 금산분리, 전업주의 등 과거의 전통적 틀에 얽매여 구애받지 않고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금산분리, 전업주의 틀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발언은 금융시장에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외환위기 발생 이래 금융산업과 산업자본의 분리는 경제력 집중 억제 등 우리 사회에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매김해 왔지만 최근 들어 디지털화, 빅블러 현상 등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빅테크 기업들의 공룡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금융회사들도 의료, 부동산, 소프트웨어 등 비금융 영역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요구였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변화의 목소리를 수렴해 "금융의 BTS를 보여주겠다"며 금융규제혁신회의를 발족시켰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현재 '금융혁신' 목소리는 모기 소리처럼 작아졌다. 올 초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발언 이후 금융위 업무 순위에서 금산분리는 저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금융위는 올해 은행권 금리인상 자제 압박, 부동산PF 부실 문제 해결, 중소기업·소상공인 코로나 대출 연착륙, 대환대출 인프라 개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소액생계비대출 출시 등의 업무에 조직의 역량을 집중시켰다. 이는 모두 급격한 금리인상의 부작용과 관련된 업무들이다.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인상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상반기를 다 보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시장에서는 '금융의 BTS'는커녕 팔이라도 좀 그만 비틀었으면 좋겠다는 자조 섞인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규제개혁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상생금융'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손'만 도드라졌다는 하소연이었다.

    물론, 금융혁신 못지않게 금융시장 안정과 서민금융 활성화도 중요하다. 금융 공급자와 금융 소비자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일도 당국이 견지해야 할 중요한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시대에 금융혁신의 필요성과 실천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은행 과점깨기 대책'과의 연관성 때문에 당초 공표된 금융혁신 방안이 이런저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여러 가지 고심이 깊어서인지 대책 발표 시기도 6월에서 7월로 연기됐다고 한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금융의 혁신과 안정 사이에서 당국이 묘수를 잘 찾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