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상회, 크리에이티브로 로컬 브랜드 재생하다매거진 '인(iiin)' 발행, 제주 브랜드 '한림수직' 재론칭 등 로컬 기반 콘텐츠 사업 펼쳐 주목"지금, 여기에서,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 고선영 재주상회 대표. ⓒ재주상회
    ▲ 고선영 재주상회 대표. ⓒ재주상회
    브랜드 홍수의 시대. 매일 무수한 브랜드들이 새로 등장하고 조용히 사라지기도 합니다. 척박한 사업 환경과 무한경쟁 속에서 신생 브랜드가 단단히 뿌리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브랜드의 탄생'에서는 작지만 강한 힘을 지닌 한국 브랜드들을 소개하고, 브랜드 고유의 크리에이티비티와 무한한 가능성을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로컬 브랜드는 로컬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차별화된 브랜드 평판을 얻은 지역 기반의 기업이다. 과거 로컬 브랜드는 통상적으로 지역 특산품을 생산하는 업체를 뜻했다. 이제 로컬 브랜드의 경쟁력은 크리에이터로부터 나온다. 지방 정부들이 로컬 창업을 장려하고 로컬 기반 크리에이터가 증가하는 가운데 지역 곳곳에서 크리에이터 기반의 로컬 브랜드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브리프는 최근 제주도 사계생활에서 고선영 재주상회 대표를 만나 콘텐츠 그룹 재주상회의 철학과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재주상회는 제주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큐레이션 기업으로 매거진 '인(iiin)' 발행을 시작으로, 로컬 콘텐츠 출판, 공간 개발 및 편집숍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제주 태생의 니트 브랜드 '한림수직'을 재탄생시켜 주목 받았다.

    고선영 대표는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제주의 가치 있는 콘텐츠를 발굴해 매거진에 담고 그 콘텐츠를 다시 오프라인화하는 것이다. 종이 속의 내용이 공간이 되고 제품이 된다"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므로 매우 어렵다. 사실상 처음으로 하는 일이라, 개척자 정신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 로컬 매거진 '인(iiin)'. ⓒ브랜드브리프
    ▲ 로컬 매거진 '인(iiin)'. ⓒ브랜드브리프
    고 대표는 10년 정도 여행잡지 기자로 일하다 지난 2011년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0년 30대 중반의 나이로 퇴사를 했다. 이후 소도시 지역들을 여행했고, 특히 제주가 맘에 들었다. 당시 여행 경험을 담아 '소도시 여행의 로망'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여행 잡지 일을 오래 하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곳들은 중심지가 아니라,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삶이 착착 쌓인 것 같은 지역이었어요. 그 중 제주가 좋아 내려오게 됐죠. 이왕 제주까지 온 김에 가능한 먼 곳을 찾다 보니 대평 지역에 정착하게 됐어요." 

    3년 후 고대표는 '인(iiin)' 매거진을 창간하고 창업을 했다. '인(iiin)'은 'I'm in island now'의 약자이자 제주 방언으로 "제주가 이 안에 있다"는 뜻도 담겨있다.

    "2013년 제주 관광객이 1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지방이 소멸하며 지역 서점이 소멸하는 시대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오고 있었죠. 이들을 위해 누군가는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책을 쓰고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어서 자연스레 책을 만들게 된거죠."
  • 재주상회. ©브랜드브리프
    ▲ 재주상회. ©브랜드브리프
    회사명이 '제주상회'가 아닌, '재주상회'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고 대표는 "창업을 할 당시, 제주에는 이미 다양한 장르의 크리에이터들이 내려와 일을 하고 있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제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재주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했다"며 "원래는 콘텐츠 협동조합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최종적으로는 콘텐츠 그룹이 됐다"고 말했다.

    노마드 워커(IT 기기를 이용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하며 일하는 사람)가 증가하는 시대, 로컬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고 대표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에 대해 '정주'가 아닌 '관계'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지니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주의 개념이 크지만 창작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좋은 곳에 먼저 자리 잡는 것은 항상 크리에이터들이고 이들은 이동하기도 한다"며 "지금은 정주의 인구보다는 관계의 인구가 더 중요한 시대다. 사람들에게 정착을 유도하기보다는 제주에서 생산적인 일들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 대표에게 재주상회의 업무 원칙과 철학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재주상회를 처음 만들 때부터 생각했고 직원들에게도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만'이라는 세 가지 단어다. 지금 해야 하는 일, 여기에서 하는 일,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며 "반대로 이야기하면, 지금 안 해도 되는 일, 여기서 안 해도 되는 일, 우리가 안 해도 되는 일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미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 한림수직 니트. ⓒ한림수직
    ▲ 한림수직 니트. ⓒ한림수직
    지난해 고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제주에서 탄생한 레거시 브랜드 한림수직을 살려낸 일이다. 한림수직은 1959년 제주에서 시작돼 2005년 문을 닫은 니트 브랜드다. 고 대표가 한림수직을 발굴해 재생한 과정은 '슈가맨'이라는 TV 프로그램(한국 가요계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 일명 슈가맨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했다.

    고 대표는 "제주에서 사업하는 분들의 모임에 갔다 우연히 한림수직에 대해 알게 됐다. 일본의 빈티지 의류를 떼러 다니는 사장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한림수직을 아냐고 물으셨다. 그 분도 일본의 빈티지 마니아들을 통해 한림수직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며 "일본 빈티지 마니아들이 한림수직 라벨이 있는 옷을 찾아 컬렉션한다고 했다. 한림수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어를 건진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고대표는 마침 로컬 브랜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는 "로컬 브랜드는 특정 지역에서 쌓아올린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차별화를 하고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로컬 브랜드 대부분은 라이프스타일 중 식(F&B)문화에 치중돼 있다"며 "의식주 중 의류와 주거는 표준화되면서 로컬 문화는 음식에만 남아 있어서인 듯 하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한림수직 이야기를 들었고 감동을 받았다. 곧바로 '한림수직을 아시나요?'라는 특집 기사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다행히 한림수직이 시작된 이시돌 목장에 기록이 남아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 패트릭 J.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가 1959년 한림수직을 설립했다. 당시 제주에는 '물질' 말고는 일자리가 없어서 여성들은 육지의 공장에 취업하러 갔다. 부산에 일하러 간 17살 된 소녀가 2주 만에 시신이 되어 돌아오면서 패트릭 신부는 니트 생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한림수직은 성장을 거듭해 서울 조선호텔 지하에 매장을 개설하고 타임지에도 실릴 정도의 명품 브랜드가 됐다"고 설명했다.

    재주상회에서는 특집 기사를 통해 한림수직에 대해 알리고, 소셜 미디어로 제품을 수소문해 전시회를 열였다. 다음으로 이시돌 목장과 함께 상표권을 되살려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고 대표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는 도시 재생 이야기는 많이 한다. 재주상회에는 콘텐츠 기반의 재생을 고민해 왔다"며 "한림수직 브랜드는 콘텐츠 기반의 재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시돌 목장에서 양털을 깎아서 서울로 보내면 실로 만들어 니트류를 생산한다. 현재 이시돌 목장의 양털실은 전체 실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올해는 '낙양모사'라는 전통적인 울사 생산업체와 협약을 맺고 한림수직 실을 대량 생산할 계획"이라며 "수편 제품도 나올 예정이며 내년부터는 해외에도 진출한다. 올해부터 장인 라인도 추가했다. 옛날 한림수직에서 일하던 장인들을 모아 손으로 직접 짜는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 장인 라인"이라고 밝혔다.

    한림수직 제품은 출시 후 큰 호응을 얻었다. 첫 판매에서 10분 만에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2일차에는 접속이 몰려 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다.

    재주상회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매거진 첫 호를 발간한 지 며칠만에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터져 책이 팔리지 않아 매일같이 울며 보낸 시간도 있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 이제 재주상회에는 9년의 역사가 쌓였다. 여전히 고대표의 비전은 변함이 없다.

    "재주상회는 콘텐츠 회사입니다. 한림수직을 살려낸 이유는 니트를 팔아 수익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제주에 한림수직이 존재했고 그러한 시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죠. 소비자들도 니트가 없어서 한림수직 니트를 사는 것은 아닐 거예요. 한림수직의 이야기와 시간을 사는 것이죠.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고 가치를 판매하는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