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40% 단위세율 적용, 불만 커… 수낵 총리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총수일가, 상속세 재원 마련 위해 지분 처분… 넥슨 물납에 기재부 2대주주 등극하기도尹정부, '유산취득세'로 개편 공약… 巨野에 발목 잡혀, 추진 뒤로 미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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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소야대' 정국에 밀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상속·증여세 개편 추진에 제동이 걸린 가운데 영국 정부가 상속세 폐지 검토에 착수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업들은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지만, 정치권의 이념 싸움에 상속세 개편 논의는 하세월이다.

    영국 집권 노동당은 최근 상속세의 단계적 폐지 방안을 검토 중에 있으며 이를 내년 3월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은 상속재산가액 32만5000파운드(5억3000만 원쯤)를 공제한 뒤 나머지 상속재산에 대해선 무조건 40%의 세율을 적용한다. 이에 대한 영국 국민의 불만은 상당하다.

    상속세 최고세율 기준으로 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 55%, 우리나라 50%, 프랑스 45%에 이어 영국은 네 번째다. 하지만 단일세율이라는 점에서는 부담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상속재산이 얼마가 됐든 기본공제액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선 무조건 40%를 국가가 가져간다는 의미다.

    영국 정부는 전체 국민 중 3.76%만이 상속세 대상자라며 불만을 잠재우려고 하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따라 부과 대상자가 점점 늘고 있는 데다 이미 소득세를 냈던 자산에 대해 다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상속세를 두고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이라고 밝혔는데, 국민이 상속세에 대한 불만이 많은 점을 이용해 내년 총선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계획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수낵 총리의 속내야 어찌 됐든 우리나라가 영국의 상속세 논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기에는 이미 많은 부작용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지만,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적용하면 60%까지 치솟는다. 이로 인해 삼성일가의 상속세가 12조 원이나 나오자, 상속세는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국민도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상속세 이슈에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된 것이다.
  • ▲ 추경호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 추경호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주식 반대매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총수 일가가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도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총수 일가는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대부분 주식담보대출을 받는데, 금융권에서는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원금 회수가 불가능할 것을 우려해 담보로 잡은 주식을 강제 매매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6월 롯데지주 주식을 담보로 1900억 원대의 대출을 받았는데 주가가 하락하면서 지난달 반대매매를 피하기 위해 주식을 추가 담보로 제공했다.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부회장도 증여를 받으며 체결한 주식담보대출 때문에 반대매매 위기에 내몰린 바 있다.

    상속세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게임회사의 2대주주가 되는 일도 있었다. 고 김정주 넥슨그룹 회장이 타계하면서 넥슨 지주회사 NXC의 지분을 유족에게 상속했는데, 유족들이 지난 2월 상속세를 NXC 주식으로 물납하면서 기재부가 별안간 2대주주가 된 것이다. 물납 제도는 세금을 부동산이나 주식 등 현물로 내는 것을 의미한다.

    상속세에 대한 기업들의 호소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어서 윤석열 정부도 출범 초기부터 상속세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었다. 유산세 방식의 현행 과세체계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골자다.

    유산세는 피상속인, 즉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의 전체 자산을 기준으로 과세한 뒤 나머지를 상속인들이 나눠갖는 방식이다. 유산취득세는 유산을 받은 사람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으로 세 부담이 훨씬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야한다는 '응능부담의 원칙'도 지킨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부는 지난해 야심차게 준비했던 법인세 최고세율 3%포인트(p) 인하안을 관철시키지 못했고,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예상되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는 '숨 고르기'를 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추 부총리는 지난 6월 "(유산취득세 방식은) 조금 더 깊이 있게 보고 연구·논의할 필요성이 있겠다 싶어 올해 상속세 전반적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신 정부는 저출산 대응 차원에서 '혼인증여공제'를 올해 세법개정안에 포함시켰다. 혼인 전후 신혼부부에게 각각 1억 원을 추가공제해주는 내용으로, 정부는 결혼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을 지원해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거대 야당이 받아들일 수준의 증여세 개편이라는 점에서 내년 총선 이후 본격적인 상속세제 개편을 위한 일종의 '간보기'라는 시각도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우리나라 상속세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경영권 상속이 어려울 지경"이라며 "상속세율을 대폭 인하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