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내부통제 '책무구조도' 선제적 추진관성적 실적경쟁 경계…"업(業)의 윤리 바로 세우자" "고객 자산 증식 과정서 은행 이익 자연히 뒤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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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한금융지주 제공
    상당수 국내 금융사들은 '단기 실적주의'에 쉽게 빠져든다. 실적이 CEO(최고경영자)의 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가장 큰 잣대이기 때문. 최근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처럼 대규모 금융 사태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의 '정도 경영'은 '유쾌한 반란'이란 느낌을 준다. '천천히 가더라도 고객을 최우선하며 가자'는 그의 경영철학은 금융권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금융권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다. 진옥동 회장이 추진하는 정도경영의 배경과 지향점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재무적으로 1000억원 정도의 이익을 더 냈다, 2000억원을 더 냈다고 해서 과연 그 은행이 리딩뱅크인가,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 2019년 신한은행장 취임 간담회 중)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이 지난해 3월 회장 취임 이후 행장시절부터 간직해온 정도경영 철학을 더욱 구체화하며 관행적인 실적주의 타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단기적인 수익 경쟁에 매달리기보다는 내부통제를 강화하며 고객 중심 조직으로 그룹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책임경영 강화를 위한 당국의 '책무구조도' 도입을 선제적으로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잇단 횡령 사건과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 이슈 등으로 금융권에서 내부통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은행장 시절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이미 실력을 입증한 진 회장이 이끄는 변화에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 책무구조도 선제 도입…“업무 전 과정 정당화”

    26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책무구조도'가 도입된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 및 내부통제 책무를 배분한 내역을 적은 문서다. 불완전 판매와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와 관련해 관리자격인 임원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조치다.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도 불리는 책무구조도는 CEO 징계 가능성과 영업력 저하 우려 등으로 금융사 입장에서 선뜻 나서기 어려운 과제였다.

    애초 금융당국의 금융사 내부통제 강화 방안 중 하나로 수면 아래 가려있던 책무구조도를 금융권 핵심 이슈로 끌어올린 것이 진옥동 회장이다.

    진 회장은 지난해 7월 그룹 창업기념일을 기념한 ‘신한컬쳐위크(Shinhan Culture Week)’에서 “그룹의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서는 철저한 내부 견제와 검증을 통해 업무의 모든 과정이 정당화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내부통제 책무구조도’를 법령 통과 후 조기에 도입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신한금융이 책무구조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서면서 당국의 책무구조도 밑그림 작업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은 그간 신한금융이 준비한 책무구조도를 바탕으로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는 자연인이 누구인지 테스트하고 정책 실효성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내부통제에 대해서는 물러섬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진옥동 회장의 소신에 따라 책무구조도를 준비해왔다”면서 “업계에서 가장 깊게 테스트를 진행해봤다는 점에서 신속하게 책무구조도를 도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진 회장은 내부통제 강화 차원에서 지난해 ‘소비자 보호부문’도 신설했다. 각 계열사가 개별적으로 운영해 왔던 소비자보호를 그룹 차원으로 확대해 신한금융만의 탁월한 소비자보호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금융소비자 리스크 요인에 대한 선제적 대응 △전기통신금융사기 예방 강화 △완전판매문화 정착 △금융소비자 보호 내부통제 강화를 4대 전략과제로 수립했다.
  • ▲ 진옥동 (앞줄 가운데) 신한금융회장이 23일 진행된 '신한 아너스 봉사클럽' 시상식에서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제공
    ▲ 진옥동 (앞줄 가운데) 신한금융회장이 23일 진행된 '신한 아너스 봉사클럽' 시상식에서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제공
    ◇ 실적주의 관성 깬다…고객몰입 조직으로 변화 
     
    진 회장은 고객중심 경영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 임직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리딩금융’ 자리를 KB금융그룹에 내주는 등 일각에서 실적에 대한 아쉬움이 제기되지만, 진 회장은 오히려 임직원들이 관성적인 실적경쟁에 빠지지 않도록 방향을 다잡고 있다.

    진 회장은 실적 발표를 앞두고 지난 2일 계열사 CEO들을 소집해 ‘고객 중심 긴급 점검회의’를 진행했다. 실적보다 고객 중심 경영을 주문하기 위해서다.

    진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사회적 요구와 트렌드 변화에 따라 금융 사건·사고 또한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며 “경영진은 정해진 규제 준수뿐만 아니라 사회적 흐름을 먼저 읽고 해석하는 전략 수립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올 한해 그룹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2024년 신한경영포럼’에서도 “신한금융 임직원 모두가 ‘업(業)의 윤리’를 바로 세워 그룹의 최우선 전략과제인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해 달라”고 주문했다.

    ◇ ‘고객 우선’ 일관…"앞뒤가 뒤집혀선 안돼"

    진 회장의 고객 중심 경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최근 금융권에서 내부통제 이슈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 회장은 5년 전에도 행장 취임 일성으로 ‘고객중심’을 내세웠다. 비슷한 시기 기자 간담회를 통해 행장 데뷔전을 치른 다른 은행장들이 일제히 디지털과 해외진출을 내세운 것을 고려하면 당시 금융권 트렌드에서 얼핏 벗어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이는 진 회장이 업계에서 ‘돈키호테’로 불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진 회장은 “은행이 고객을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봐서는 안된다”면서 “은행의 이익은 고객의 자산을 증식시키는 과정에서 실현된다. 앞뒤가 뒤집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신한은행은 진 회장의 의지에 따라 고객 중심의 성과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은행에 이득이 되는 상품이 아니라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추천판매하는지, 그리고 적절한 사후관리가 이뤄지는지를 은행원 평가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