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고발장 제출 초강수최고위층 결단 반영 해석그룹사 확전 자제 불구 내부 술렁8조 차기구축함 전초전… 100조 방산 경쟁'절친' 김동관-정기선도 이상 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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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서열 6위 한화와 8위 HD현대가 세게 맞붙을 전망이다. 해군의 차기 구축함 사업(KDDX)를 놓고 벼랑끝 싸움이 시작된 것.한화의 근본 산업인 방위산업과 HD현대의 주력 조선업이 겹치는 지점에서 벌어진 전면전이란 점에서 적잖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선대에 이어 2대째 이어온 두 그룹의 각별한 인연에 금이 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사태의 발단은 방위사업청이 KDDX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에서 HD현대중공업에 비교적 가벼운 처분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KDDX 프로젝트가 본격 시작된 2012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군사 기밀을 빼낸 사건에 대한 징계성 조치인데 5년 간 입찰자격을 아예 박탈하는 중징계를 피한 것이다.방사청은 "방위사업법 59조에 따른 제재는 청렴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봤다"며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KDDX는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시절부터 HD현대중공업과 10년 이상을 경쟁한 사업이다. 처음으로 선체부터 전투 체계, 레이더 등 각종 무장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한다. 사업 예산은 7조8000억원에 달한다.입찰 과정 내내 한화오션과 HD현대는 치열하게 경쟁했다. 한화오션은 2012년 개념설계를 수주하면서 승기를 잡았지만, 2020년 기본설계 사업권은 HD현대중공업에 뺏겼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당시 대우조선해양이 채권단 체제에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았던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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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군사 기밀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양 측의 경쟁은 감정 싸움으로 격화됐다. 군사 기밀이란 것이 HD현대중공업 직원이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설계를 해군으로부터 빼돌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 측은 유출된 설계를 반영하지 않았다 주장했지만, 개념설계부터 쌓아온 자신들의 연구실적을 도둑질 당했다는 점에서 대우조선해양 측의 반발은 상당했다.이후 대우조선해양은 한화 그룹으로 인수됐고 한화오션은 지난해 울산급 호위함 배치 lll 5~6번함 건조 사업을 따내는 등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방사청의 이번 결정으로 HD현대중공업의 KDDX 사업 참여가 가능해지자 한화오션 측이 문제제기에 나선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은 이번 사태로 감점 1.8점이란 페널티를 받고 있지만, 기본설계를 수주한 만큼 입찰 결과는 끝까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한화오션은 군사 기밀 유출 사건에 HD현대중공업 경영진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며 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방사청 재심의를 요구하고 있다.한화오션 '초강수'… 배경은?조선업계는 한화오션의 형사 고발을 시작으로 양 측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업계 관계자는 "해외 선주를 유치하는 조선업에서 경쟁과 법적 분쟁은 다반사지만 형사 고발까지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며 "이번 사건을 끝까지 끌고가 결판을 보겠다는 의미"라고 했다.실제로 지난 5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K-조선 차세대 이니셔티브 회의'에서 만난 권혁웅 한화오션 대표와 김성준 HD한국조선해양 대표는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긴장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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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화오션의 초강수 배경에 그룹 경영진의 결단이 반영됐을 것이란 시각이 나온다. 한화가 주력 사업인 방위산업에서 더이상 경쟁사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얘기다.재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시절 산업은행 체제에서 설움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아는데 한화 그룹으로 편입되면서 위상을 분명히 하려는 것 같다"며 "재계서열이 엇비슷한 두 기업집단의 자존심 싸움도 없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23년 기준 한화의 공정자산총액은 83조원, HD현대는 80조7000억원이다.양 측이 3세 경영을 눈앞에 뒀다는 점도 경쟁 구도를 심화시키는 지점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는 지난 2022년 8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승계를 기정사실화 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한국조선해양 대표도 지난해 부회장에 오르며 후계 구도를 굳혔다.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거대 그룹 간의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특히 정 이사장과 김 회장이 서울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60년 넘는 세월을 각별한 친분을 이어왔고, 자녀인 정 부회장과 김 부회장 역시 재계에서 알아주는 절친으로 지내왔다는 점에서 오랜 인연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한화오션 측 관계자는 "경쟁사 간 대립 구도나 이해 관계 문제로 보는 건 지나친 비약"이라며 "차세대 전함을 건조하는 국방 사업의 신뢰가 걸린 중대한 사안으로 이해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