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상법 382조3 개정 착수이사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 넣기로경영계 "현행 법 배치, 혼란 야기할 것"소액주주 다양한 손배소송 우려
  •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뉴데일리DB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뉴데일리DB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추진되는 상법 개정안에 경영계가 근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를 위해 일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도 넣자는 게 핵심 골자인데, 수많은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모두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재계는 입을 모은다.

    10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발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는 것은 해외 입법례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다본 다수결 원칙 및 회사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겼다.

    연구용역을 수행한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장은 현실화시킬 수 없는 이상적 관념에 불과하다"며 "이를 상법에서 강제할 경우 회사의 경영판단을 지연시켜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이달 중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후 22대 국회 원구성이 마무리되는 올해 하반기부터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을 착수할 예정이다. 현행 상법으로는 이사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더라도 별다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맹점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다.

    개정안 추진 과정에서 논란은 있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경제이슈점검회의에서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라"는 지시 이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곧바로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은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도 포함시키는 상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는 무조건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을 실었다.
  • ▲ 주요국의 회사법 입법례ⓒ한국경제인협회
    ▲ 주요국의 회사법 입법례ⓒ한국경제인협회
    하지만 경영계는 상법 개정안이 취지와 달리 경영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경협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모범회사법과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 주요국 회사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된다. 일부에서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에 비슷한 문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회사 이익이 곧 주주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문구에 불과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권 교수는 상법상 이사는 주주총회 결의로 회사가 임용한 '대리인'으로 충실의무가 위임계약을 맺은 회사에게만 한정돼 개정안이 주식회사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자본 다수결 원칙에 따라 출자 비중이 높은 주주가 경영권을 갖는데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뜻이 달라도 이사가 수액주주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액주주는 배당 확대나 당장의 이익 분배를 요구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충실의무 불이행을 빌미로 손해배상소송을 벌일 공산이 있다. 또 회사는 이를 대비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임원배상책임보험을 들어야 하고 이런 비용들은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전가될 수 밖에 없다.

    권 교수는 "주주 간 이해충돌을 이사가 합치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결국 소액주주가 누리는 이익이 커지는 만큼 대주주의 지배권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