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지배구조 개편에 에너빌리티·밥캣 개인투자자 불만 거세"터무니 없는 합병 비율, 기업 가치 제대로 반영 못해"그룹株 연일 변동성…"혼란은 투자자 몫, 후진국 수준 거버넌스"
-
두산그룹의 역대급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공개되면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주주들이 원성이 자자합니다. 두산그룹이 지난 11일 이사회를 열고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의 분할과 합병, 포괄적 주식 교환 등을 결정했다고 밝히면서인데요.
현재 두산그룹의 지배구조상 중간지주 격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의 주식이 포함된 투자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게 골자입니다.
인적분할에 따라 두산밥캣의 주주들은 1주당 두산로보틱스 주식 0.63주를 교환받고, 두산밥캣은 오는 11월 중 상장 폐지됩니다.
회사 측은 사업 부문을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첨단소재 3대 부문으로 재편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포장지는 그럴 듯하지만 두산밥캣 주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밥캣 주주 입장에서는 저평가된 회사 주식을 고평가된 회사 주식으로 대신 받아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밥캣은 지난해 연간 매출액 9조7589억원, 영업이익 1조3899억원의 그룹 내 알짜배기 회사로 꼽힙니다. 반면 매출 규모 500억원대 두산로보틱스는 2015년 설립 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적자 회사란 소리죠.
주가수익배율(PER)은 적자상태이기에 산정할 수 없지만 지난 3월 기준 두산로보틱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3.19배, 주당순자산가치(BPS)는 6734원입니다. 두산밥캣의 경우 PBR은 약 0.78배, BPS는 6만2737원, PER은 5.28배죠. 알짜 회사 주식 1주를 적자 회사 주식 0.63주와 바꿔야 하는 만큼 합병 비율이 적정한지에 대해 불만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복장이 터지는 건 알짜 자회사를 두산로보틱스에게 넘겨줘야 하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지난해 매출액(17조5898억원) 55%, 영업익(1조4673억원) 94%를 두산밥캣이 벌어들였는데요. 원전 사업 전망이 밝아지고 있지만 지난해엔 사실상 두산밥캣이 두산에너빌리티를 먹여 살린 셈입니다.
이 역시 합병 비율에 대해서도 불만이 나옵니다. 합병 신주 발행 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는 1: 0.03 비율로 로보틱스 주식을 받게 됩니다. 에너빌리티 주식 1주를 갖고 있으면 합병되면서 로보틱스 주식 0.03주를 준다는 말입니다.
신설 투자사업 부문은 분할 재상장하기 전까지 비상장사인데요. 비상장주식은 정확한 기준시가를 산정할 수 없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1.5대 비율로 가중평균해 가액을 정하거나 유사 분할합병 사례를 참고해 본질가치 평가방식으로 가치를 정하고 있습니다.
두산은 시가에 따라 두산로보틱스 1주당 가치 8만114원과 본질가치 계산에 따라 분할법인 1주당 가치 1만221원을 도출해 합병 비율을 반영했는데요. 회사나 외부 회계법인 등의 해석에 달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도출된 0.03이라는 합병 비율이 주주들로선 찝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산 오너 일가가 추가적인 자금 투입 없이 알짜 회사의 지배력을 높였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기존 두산→두산에너빌리티(30%)→두산밥캣(46%)로 이어지던 지배구조는 두산→두산로보틱스(42%)→두산밥캣(100%)으로 변경되는데요.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간접지분율은 기존 14%에서 42%로 크게 증가합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두산 지배구조 개편은)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악용한 사례"라면서 "지배주주에 가장 유리한 시기와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또는 주식 교환이 이뤄지면서 그 과정에서 일반 주주들은 회사 성장에 따른 수익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민낯"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발표 이후 두산그룹 주가는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종가 기준 두산밥캣은 전일 대비 10% 급락했고, 사업 재편 방향이 발표됐던 전 거래일 24% 가까이 급등했던 두산로보틱스 차익 실현 매도세에 하루 만에 11.54% 폭락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 현재 두산밥캣은 0.3% 오르는 반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각각 4.63%, 3.53% 하락 중입니다. 지주사인 두산의 주가는 10% 넘게 폭락하고 있습니다.
주가 등락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요. 혼란스러움은 결국 투자자들의 몫이 되고 있습니다.
두산밥캣에 투자한 한 개인 투자자는 "미국 증시였으면 대주주가 대법원에 갈 일이 국내 증시에선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후진국 수준의 거버넌스를 개선하지 않으면 국장엔 미래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