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평가 "한국 R&D 성과, 투자 대비 놀라울 정도로 낮다"尹, 국가R&D를 '카르텔' '비효율' 규정… 개혁 시동 걸자 곳곳서 반발전문가 "국가R&D 체질 개선 시급… 정부 기획·조정 역량 강화해야"
  • ▲ 네이처 인덱스 2024 한국 특집호의 표지.ⓒ네이처
    ▲ 네이처 인덱스 2024 한국 특집호의 표지.ⓒ네이처

    한국이 연구개발(R&D)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투자 대비 성과가 저조하다는 유력 국제학술지의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추진 중인 R&D 예산 구조개혁과 시스템 혁신에 고삐를 바짝 당길지 주목된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글로벌 첨단 기술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하는 상황에서 과학계에선 한국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 안팎에선 '옥석'을 제대로 가려 좀비기업에 예산이 새는 걸 막고 제대로 된 연구에 집중 투자하는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모은다.


    22일 학계에 따르면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전날 발간한 네이처 인덱스 특집호를 통해 "한국은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인구당 연구자 비율이 높고 네이처 인덱스에 등록된 다른 선도국보다 R&D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연구 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낮다"고 평가했다.


    네이처 인덱스가 자연과학 분야 최상위 논문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을 집계해 인구 수로 나눈 지표를 토대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한 결과,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5% 가까이를 R&D에 투입하고 있음에도 이 지표는 30 정도로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하위권에 머물렀다.


    GDP의 5.5%를 R&D에 투입해 가장 비중이 높은 이스라엘은 60 정도였고, 스위스는 가장 높았다. 그러나 한국의 연구 성과는 세계 8위에 그쳤다. 미국이 1위였고, 중국이 2위, 독일이 3위였다.


    이는 투자 대비 성과가 저조한 원인으로 학계와 산업계 간 협업 부족,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력 위축, 한정된 국가와의 국제 협력, 그리고 여성 연구자와 같은 비주류 인재에 대한 연구계의 높은 문턱이 꼽혔다.


    벡 크루 수석 에디터는 "한국의 과학에 대한 강한 투자와 기술 혁신에 대한 명성은 매우 인상적이지만, 지출과 성과 간의 불일치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며 "보다 다양한 국제 파트너십을 육성하고 연구 분야에서 여성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한국은 과학 커뮤니티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글로벌 과학 리더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 ▲ 윤석열 대통령 ⓒ뉴데일리DB
    ▲ 윤석열 대통령 ⓒ뉴데일리DB

    그간 정부 R&D는 예산의 양적 확대에 비해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정부 R&D 결과물이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던 이유로는 연구의 질보다 양적 성과를 강조하고 혁신적·도전적 연구보다 실패하지 않는 연구에 투자하는 시스템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국내 R&D 성과 부족 문제에서 전체 R&D 투자 규모나 정부 R&D 예산과 같은 투입 측면보다 R&D 기술적 성과와 경제적 성과라는 산출 측면의 문제점을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성과 중에서 R&D 경제성과 부족 응답률(45.3%)이 기술적 성과 부족(13.2%)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윤석열 정부는 R&D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올해 R&D 예산을 전년 대비 약 15% 삭감하면서 군살을 빼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나눠주기식 비효율적 관행을 없애고 연구비 나눠 먹기와 과제 쪼개기, 중복 투자 등 비효율을 바로잡겠다는 의도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최초를 지향하는 도전적 연구와 미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를 두고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을 무시하고 연구 현장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역시 예산 삭감 프레임에만 집중하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중에도 증가했던 국가 R&D 예산이 33년 만에 삭감됐다"고 비판했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와 교육 투자가 이뤄져야 대한민국의 미래와 지속적인 성장, 발전이 가능할 것인데, 어처구니없게도 계속 증액됐다. R&D 예산을 대규모로 삭감해 연구개발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각국이 기술 패권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R&D 정책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봤다.


    김소영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윤 정부는 과학과 기술에서 다시 힘을 얻기 위해 정책, 제도, 자금 구조를 개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민철 산업정책연구본부 산업혁신정책실 부연구위원은 "우리 경제는 저성장 고착화, 디지털·그린 전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전방위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술 혁신 경쟁력 확보는 번영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돼 가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R&D는 전반적으로 투입 대비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임무 지향형 혁신 정책으로 전환을 통해 국내 R&D의 복합적·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우선 정부 R&D 거버넌스 체계 개선과 정부의 기획과 조정 역량 강화를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