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원장 발언후 은행권 주담대 한도·만기 축소실수요자들 '패닉'…"아파트 잔금 수천만원 모잘라"'마통' 한도 하락…오락가락 정책에 시장 혼란 가중
  • ▲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내집마련 꿈에 부풀었던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들이 집단패닉에 빠졌다. 정부의 전방위 금융규제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가 급감하면서 자금마련계획이 뿌리째 틀어져버린 까닭이다. 스트레스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을 연기해 '막차탑승'을 부채질해놓고 돌연 대출문턱을 높이는 오락가락 정책에 애먼 서민만 피해를 보고 있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은행권이 대출한도 및 만기 축소 등 주담대 조이기에 나서면서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신축아파트 청약에 당첨됐거나, 아파트 매수를 위해 매매계약서를 쓰고 잔금대출을 준비했던 이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주담대 한도가 갑작스럽게 줄면서 당장 수천만원의 잔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신용대출 규제강화로 '마이너스통장(마통)' 한도까지 줄어 일부 실수요자는 계약금마저 떼일 위기에 내몰렸다.

    은행권이 주담대 대출한도와 만기까지 옥죄고 나선 것은 지난 2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주담대 금리인상은 당국이 바란게 아니다"라며 은행권 금리인상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 원장 발언 한마디에 금융권은 일제히 주담대 한도와 만기 축소에 돌입했다.

    KB국민은행은 오는 29일부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최장기간을 30년으로 줄인다. 현재 최장 대출기간은 만 34세이하 50년, 그외 40년이다.

    신규 주담대 모기지보험(MCI·MCG) 취급도 중단하기로 했다. MCI·MCG는 주담대와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이다.

    해당보험이 없으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해 대출한도가 축소된다. MCI·MCG 가입이 제한되면 서울은 대출한도가 5500만원, 기타지역은 2500만원 줄어든다.

    신한은행도 MCI·MCG 취급을 중단했으며 우리은행은 내달 2일부터 주담대 총량관리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내달부터 2단계 스트레스DSR이 시행돼 대출한도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2단계 DSR이 시행되면 1단계가 적용중인 현재보다 수도권 기준 대출한도가 약 4000만~6000만원가량 낮아진다.
  • ▲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당장 아파트 잔금을 치러야 하는 실수요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직 주담대 규제강화안을 발표하지 않은 지방은행 등에 대출 가능여부를 문의하거나 제2금융권 상품을 알아보는 이들도 적잖다.

    최근 아파트 매매계약서를 쓰고 이사를 준비중인 서모씨(38)는 "원래 계획보다 잔금이 4800만원가량 모자란 상황"이라며 "주담대 한도가 수천만원 단위로 갑자기 줄어든 탓에 계약금까지 날리게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다른 은행 두세곳에 전화를 돌려봐는데 계속 통화대기가 걸려있는 상황"며 "주담대 한도 축소 영향으로 대체상품을 알아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부연했다.

    11월 신축아파트 입주를 앞둔 최모씨(41)는 "원래 디딤돌대출을 알아봤다가 금리인상 소식을 듣고 한도가 높은 주담대로 갈아탔는데 결국 악수가 됐다"며 "가족이나 보험대출 등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통을 뚫어 잔금을 마련하는 것도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KB국민은행은 오는 29일부터 신규로 마통을 개설할 경우 현재 1억~1억5000만원인 한도를 5000만원으로 줄인다.

    내달 시행되는 2단계 DSR도 마통 한도를 1000만~2000만원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선 정부의 오락가락 금융정책이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6월 2단계 DSR규제 시행을 두달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규제 전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막차 수요가 몰리면서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다.

    특례보금자리대출,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대출도 집값을 밀어올렸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지난 6월말 기준 1780조원까지 치솟자 정부는 뒤늦게 주담대 금리를 올리고 대출한도를 줄이는 등 냉온탕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 금융정책이 '샤워실의 바보'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가 저서 '선택할 자유'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샤워실에서 물을 틀 때 따뜻한 물이 빨리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온수방향으로 돌렸다가 너무 뜨거운 물이 나오면 재빨리 찬물쪽으로 돌리고 반대로 너무 차가운 물이 나오면 다시 온수방향으로 돌리는 모습을 빗대 정부 '널뛰기식' 대응을 비판할 때 쓰인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정책대출과 2단계 DSR규제 연기로 시장에 '집을 사라'는 시그널을 줘놓고 갑자기 대출을 조인 탓에 실수요자들이 혼란에 빠졌다"며 "일관성 있는 금융정책을 내놔야 장기적으로 시장이 안정되고 정책신뢰도도 쌓일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