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스웨덴·독일 등 연금 개혁·정년 연장 동시 안착국내서도 정년 연장 공감대 있지만 각론에선 '동상이몽'여·야·정 정파성 떠나 협치… "세대 갈등 해소 노력 필요""정년연장 논의 전 노동 유연성·임금 개편 등 선행돼야"
  • ▲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뉴시스
    ▲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뉴시스
    [편집자주] 정부가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을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법정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무조건적인 정년연장이 아닌 고령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노동시장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사 양 측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해외 선진국의 사례와 전문가들의 제언을 토대로 정년연장 해법을 모색해본다.

    1990년대 초 금융·재정위기를 겪은 핀란드는 정년연장 정책으로 경제 회복을 이룬 국가다. 위기를 겪을 당시 60~64세 사이 근로자 비율이 20% 수준에 불과했고 이로 인해 숙련노동자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68세까지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 보너스 제도를 도입했다. 결국 이 정책은 노년층 계속 고용해 세 수입을 늘리고 연금재정도 확보하는 일거양득 효과를 거뒀다.

    저출산·고령화는 세계 각국의 경제와 산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인구 고령화로 연금 고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연금개혁 에 고삐를 죄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과 보험료율 상향안이 대표적이다. 이와 동시에 핀란드 사례처럼 '정년 연장' 문제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0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정년은 60세 그대로인데 국민연금 의무 가입기간을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하면 60~64세 사이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년 연장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올릴 경우 정년퇴직을 하고도 보험료를 내야 해서 정년 연장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년 연장 문제는 이미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논의하고 있지만 해외 여러 사례를 토대로 부작용 없이 우리 실정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핀란드와 비슷한 시기에 재정위기를 맞은 스웨덴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연금 고갈 문제에 봉착했다. 이후 1990년 중반부터 연금 개혁을 위한 국가로드맵을 마련했고 2013년 연금 연령 조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에 따라 스웨덴은 지난해부터 연금 수급과 정년을 모두 67세로 연장했다.

    독일도 지난해 노령연금 수급 연령을 2030년 67세로 올리고 2030년까지 현행 66세인 정년을 매년 2개월씩 늘려 67세로 맞출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정년 연장' 자체에는 큰 틀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노동계는 일률적인 '정년 연장'을, 경영계는 선별적인 '재고용(계속고용)'을 선호하는 상황으로 입장이 다르다. 또, 정년 연장이 청년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반발도 있다. 

    향후 진행될 정치권 논의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추이를 봐야하지만 노사의 대립이 여야의 대립으로 번져 연금 개혁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강성 노조를 중심으로 한 무조건적인 정년 연장 요구, 정치 진출을 위한 논리에 편향된 전문가들의 의견 등이 연금개혁 지지부진에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금 개혁에 성공한 국가들은 이러한 파열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보·보수를 초월한 합의체를 개혁에 앞서 냈다. 

    스웨덴은 1984년 사민당 등 좌우 5개 정당으로 이뤄진 합의체를 출범하고 2013년 연금 연령 조정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국민의견수렴절차를 거쳤다. 특히 연금 개혁의 당위성 설명을 위해 국민 설득에만 27년이란 시간을 쓰며 연금 개혁의 '교과서'라고도 평가받았다.

    영국도 2007년 연금개혁을 위해 정파를 초월한 합의체를 출범했고 독일도 노사대표, 학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탈정치 기구'를 만들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년 연장은 일자리를 두고 젊은 세대와 고령 세대의 일자리 다툼으로 번질 문제도 있다"면서 "두 세대 모두 인구는 감소하는 상황에서 공멸하지 않기 위해선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정부가) 국민에게 끊임없이 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에 앞서 노동 시장 개선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이강구 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을 해도 많은 비정규직, 계약직 등은 예외가 되는데 효과를 보려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고령자들의 탄력적인 근무시간 조정 등 노인 일자리에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노동자가 원하면 기업은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도록 했다. 정년을 폐지하거나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거나 정년 후 재고용(계속고용)을 하는 방식이다. 더 나아가 기업의 고용 확보 의무를 70세까지로 늘리도록 노력할 것을 의무화했다.

    일본의 고령자 노동은 이미 보편화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고령자 고용상황 보고(2023년)에 따르면 65세까지의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를 실시한 기업 비율이 99.9%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정년폐지 3.9%, 정년연장 26.9%, 계속고용제도 69.2%로 대부분 기업이 정년 후 재고용을 선호한다.

    일부에선 고임금 고령 노동자를 감당해야 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책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현재 60세인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경우 한해 약 15조9000억원 수준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정년 연장에 부담을 느끼면서 가장 큰 요인으로 연공급 임금체계로 인한 인건비 증가(50.3%)를 꼽고 있다. 때문에 연공급 임금체계 개편 없이 고령자 고용 정책을 비롯한 정년연장을 논하기는 힘들다는 주장이 나온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고령 인력 활용에 대한 기업 부담을 줄이고, 신규 채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재고용 중심의 계속고용 정책이 적절하다"면서 "그 과정에서 현행 연공급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먼저 해결해야만 고령자 계속고용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