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모바일·소비자향 침체 계속중국 부진에 장기화 우AI는 완전 딴 판… HBM 변화 트리거
  • ▲ SK하이닉스 HBM3E 제품 이미지 ⓒ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 HBM3E 제품 이미지 ⓒSK하이닉스
    올 하반기 범용 메모리 시장이 예상 밖 침체가 깊어지는 반면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은 활기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전통적인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주기)이 사실상 깨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주문 후생산 방식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이 메모리 시장의 대세로 떠오르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더 굳어지는 모습이다.

    16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통적인 메모리 사이클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다운사이클에서 벗어나 올해부터 내년까지는 메모리 제조사들이 호황기를 톡톡히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는데, 하반기 들어서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범용 D램 수요에 실적까지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전통적인 메모리 수요처인 PC와 모바일 등 IT 기기 수요가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한 영향이 크다. 특히 3분기는 IT 기기 성수기로 통하는 시기였지만 소비자들이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제조사들의 재고 수준도 높아졌다.

    중국시장 회복이 더디다는 점도 범용 D램이 예상보다 깊은 침체에 빠진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3분기에 모바일 D램 재고를 줄이는 데 집중하면서 지연된 조달 전략으로 D램 가격 상승도 막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로 인해 모바일 D램 수요가 순차적으로 30% 이상 감소했다"며 "4분기에도 이런 수동적 조달 방식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까닭에 4분기에도 범용 D램 가격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5% 미만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메모리 제조사들 입장에선 지난 호황기였던 4년 전 상황에 비해 반토막 수준의 실적을 거두는데 만족해야 했던 3분기 분위기가 연말까지도 간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AI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는 HBM은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까지 이어진 메모리 다운사이클이 HBM 덕에 조기에 끝맺음을 했을정도로 메모리 시장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4분기 범용 D램이 0~5% 수준의 가격 상승으로 제자리를 맴도는데도 전체 D램 평균 가격이 8~13%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중심에도 HBM이 있다. 범용 D램 대비 몸값이 최소 6배 이상 차이나는 HBM이 D램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전체 D램 가격 상승을 이끄는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더 중요한 점은 HBM이 범용 D램과는 달리 가격 하락 위험이 적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메모리 사이클이 수요 흐름에 따른 제품 가격 등락으로 2~3년 주기를 유지했다면 HBM은 애초에 정해진 물량만 양산하는 구조다보니 가격 변동폭이 크지 않다. 고객사의 주문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면서 고객사별로 제품 가격 차이가 크다는 점도 가격 책정에는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글로벌 시장 전반에서 AI를 중심으로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범용 메모리와 HBM의 노선은 더 갈리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시장조사기관들이나 금융투자업계가 내놓는 메모리 시장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AI 수요 확대는 내년에도 이어질 뿐만 아니라 당분간 메모리 시장 성장을 이끄는 강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글이나 아마존, 메타 등의 빅테크들이 내년에도 AI 데이터센터를 확충할 계획을 잇따라 밝히면서 AI 수요는 여전히 굳건함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렇게 범용 D램과 달리 선주문 후생산 방식으로 제조되는 HBM이 완전히 다른 사이클을 보여주면서 이제는 메모리 제조사들이 범용 제품과 HBM에 각각 별개의 사이클을 적용시켜 시장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메모리 3사들은 이 같은 시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HBM 제조 뿐만 아니라 시장 조사 및 판매 전략 등의 업무에도 별도의 담당자를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