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격화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으로 급부상PSMC·마이크론, 제조시설·R&D 적극 투자삼성, 법인·R&D센터만… 하이닉스, 진출 안해 "주요국 반도체 협력 강화… 전략 재검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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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하면서 인도가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 풍부한 IT 인력, 인도 정부의 적극 지원 등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미국 대선 후 중국 견제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해외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최근 몇년간 대(對) 인도 투자·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대만 반도체 3위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PSMC는 인도 최대 기업 타타그룹 산하 타타 일렉트로닉스와 인도 최초 12인치 웨이퍼 팹을 건설하는 최종 계약을 맺었다. 총 투자액은 110억달러로 월 5만장의 웨이퍼를 2026년까지 생산하는 게 목표다.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러(MCU), 고성능 AI 반도체 등이 생산될 예정이다. 

    같은 달 일본 반도체 장비 기업 도쿄일렉트론(TEL)도 34억달러를 투자키로 했으며, 네덜란드 반도체기업 NXP도 최근 10억 달러를 투자해 인도에 연구개발(R&D) 시설을 확대하기로 했다. 미국 반도체 회사 아날로그디바이스(ADI)도 반도체 제조와 관련한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었다. 

    한발 앞서 지난해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구자라트에 반도체 조립·테스트·마케팅(ATMP)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27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으며, 미국 AMD도 지난해부터 5년간 4억달러를 투자해 인도에서 반도체 설계를 담당할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하우스를 건설할 예정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이 같은 행보는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 내 투자를 제3국으로 분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가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 속에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은 중국으로의 수출을 제한하고 투자를 금지하는 등 날로 견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인도 정부의 직접 보조금 등 적극적 투자지원도 반도체 생태계 육성을 거들고 있다. 인도정부는 2021년 12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을 유치하기 위한 100억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 프로그램 ‘인도반도체미션(ISM)’을 발표하고 반도체 자립 추진을 선언한 바 있다. 이 밖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풍부한 고급 정보통신(IT) 인재 등도 강점이다. 

    다만 아직까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인도 내 생산시설 건립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반도체 인도법인(SSIR)과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진출 조차 하지 않았다. 작년 7월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 건설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양사 모두 미국과 한국 등에서 기존 진행 중인 투자건들이 있는데다 열악한 인프라, 기술 유출 우려 등 때문에 인도 투자를 쉽게 결정내릴 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반도체 회사 관계자는 “인도의 경우 아직 반도체 산업 초기 단계로 범용칩부터 접근하고 있고 국내는 AI 반도체 등 첨단칩에 집중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면서 “반도체 생산에 물과 전기가 많이 사용되는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것에 대한 고민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대선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인도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 대선 후보 모두 대중국 통상 공세를 강화한 가운데, 선거가 끝나고 나면 초당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연방의회가 추진 중인 중국 견제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 정부는 2022년 10월 중국 반도체 기업에 대해 장비 수출을 금지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해서도 규제를 시사한 바 있다. 다행히 양사의 반도체 공장은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 별도 허가 절차나 기한 없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됐지만 향후 미국 대중국 규제 수위를 높이면 또 다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램은 중국이 스스로 조달하게 될 것이고, 미국 규제 탓에 첨단 메모리는 중국에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따라 해외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주요 선진국들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완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인도와 반도체 관련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한국정부도 인도정부와 협력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