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 잘못 없이도 보증 취소할 수 있는 약관 시정 권고 공정위 "서민, 청년 등 취약계층 임차인 보호 기여 기대"
  • ▲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뉴시스
    ▲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전세사기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임차인의 잘못이 없어도 보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약관조항에 대한 시정을 권고했다. 

    공정위는 HUG의 '개인임대사업자 임대보증금 보증 약관'을 심사해 보증 취소 관련 조항을 시정하도록 권고했다고 5일 밝혔다. 

    시정권고 대상 조항은 민간임대주택의 임대인(주채무자)이 사기 또는 허위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거나 이를 근거로 보증을 신청한 경우 임차인(보증채권자)의 귀책사유가 없어도 HUG가 보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최근 전세사기가 급증하면서 지난달 25일 기준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서 전세사기피해자등으로 인정된 누적건수는 2만3730건에 달한다. 

    일례로 부산에서는 1명의 임대인이 무자본 갭투자로 주택 190가구를 매입해 4년간 임차인 150여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190억여원을 가로챈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HUG가 개인임대사업자 임대보증금보증약관의 보증취소 조항을 근거로 보증을 취소, 임대보증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신고가 있었다. 피해자들 중 일부는 HUG와 전세보증금 지급 청구 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공정위는 신고된 약관조항에 대해 약관심사자문위원회의 자문 등을 거쳐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고 HUG에 해당 약관조항을 수정·삭제하도록 시정권고했다.

    문제된 조항에 따르면 HUG의 보증채무는 임차인의 잘못 없이도 임대인의 귀책사유만으로 깨지게 돼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약관법 제6조제2항제1호)에 해당한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해당 조항은 보험계약자의 사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더라도 피보험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없다면 보험자가 보험금액을 지급하도록 한 상법 규정 취지에도 반해, 위험을 고객에게 떠넘기고 사업자에게 법률상 부여되지 않은 해지권을 부여하는 조항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국민의 주거 안정이라는 민간임대주택 제도의 목적에도 맞지 않고 보증계약에 따른 임차인의 기본적 권리(보증금을 반환받을 권리)도 제한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계약에 따르는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에도 해당한다. 

    HUG가 공정위의 시정권고에 따라 불공정약관을 시정하면, 향후 임대인의 잘못으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선의의 임차인이 보증을 통해서도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전망이다.  

    단 공정위 약관심사는 이미 체결된 계약관계를 소급해 무효로 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자가 향후 계약 체결 시 문제된 약관조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공정위는 민간임대주택의 임대보증금은 대부분 임차인의 재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전세사기 피해 주택유형은 다세대주택(30.7%), 오피스텔(20.8%), 다가구(18.2%) 등이 주를 이루며 피해자도 40세 미만 청년층이 다수(74.27%)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서민, 청년 등 취약계층 임차인의 보호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시정권고 이후 HUG와 해당 약관조항에 대한 시정 협의를 진행하고 이행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