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AI 딥시크發 지각 변동 예고삼성·SK, HBM 올인 전략 변화 불가피삼성전자 "다양한 HBM 니즈 커질 듯"맞춤형 HBM 능한 K-반도체, 시장 선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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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AI(인공지능) 스타트업인 딥시크가 '저가형 AI'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되면서 AI 반도체에 필수인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메모리를 공급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빠르게 추격하는 중국 메모리업체들의 공격도 더 거세지겠지만 한국 메모리 없이는 전 세계 AI 시장이 굴러갈 수 없다는 쐐기를 박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긍정론이 힘을 얻고 있다.

    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중국 AI 스타트업인 딥시크가 미국 오픈AI 사의 AI 모델을 뛰어넘은 추론형 AI 모델 'R1'을 공개하면서 AI 가속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HBM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이에 맞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성큼 다가온 AI 시대에 '저가형 AI' 물꼬 튼 딥시크까지… '속도전'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는 AI 기술이 최근 딥시크로 또 한번 변곡점을 맞았다. 이들이 내놓은 AI 모델 R1이 저사양 GPU 수천 장을 사용해 완성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업계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딥시크에 앞서 AI 추론 모델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오픈AI의 최신 챗GPT에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가속기 'H100'이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딥시크는 여기서 성능을 다운그레이드 한 'H800'을 사용해 오픈AI에 준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성능을 내는 AI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비용 격차도 컸다. 딥시크의 R1은 개발 비용으로 557만 6000달러(약 81억 원)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오픈 AI의 최신 챗GPT에는 이의 20배에 달하는 1억 달러(약 1455억 원)가 소요됐다. 오픈AI 모델 보다 더 낮은 사양의 GPU에 HBM도 구사양 제품을 쓰면서 비슷한 성능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IT업계는 물론이고 금융투자시장도 충격에 휩싸였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은 이번 딥시크 AI 모델에 특히 더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엔비디아 고성능 GPU에 들어가는 최첨단 HBM을 생산하는데 주력하고 있고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실적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환경 변화가 펼쳐지고 있는 까닭이다.

    딥시크가 활용한 엔비디아의 H800 등 상대적으로 저사양 GPU에는 최첨단인 5세대 HBM보다 2세대 이상 뒤쳐진 HBM2E(3세대)나 HBM3(4세대) 제품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만으로도 추론형 AI 모델을 충분히 구동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면 앞으로 저사양 HBM 수요가 늘어날 여지는 크다.

    전날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와 컨퍼런스콜을 진행한 삼성전자도 딥시크에서 촉발된 저가형 AI 모델 시장이 확산되면 새로운 AI 메모리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제한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딥시크가 메모리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단기적인 위험 요인과 장기적인 기회요인이 공존한다"면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업계 동향을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장 최첨단 HBM 제품 판매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 HBM 시장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 부사장은 "신기술 도입에 따른 업계 역학관계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AI 시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딥시크의 사례로 저사양 GPU의 가능성을 확인하긴 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AI 모델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저사양은 저사양대로, 최첨단 고사양은 고사양대로 AI 투자 저변이 넓어지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무게가 실린다. 저가형 AI 모델이 딥시크로 대표되는 중국에서 주도하는 구도라면 중국의 질주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첨단 고사양 AI 육성에 더 힘을 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 ▲ SK하이닉스 HBM3E 제품 이미지 ⓒ뉴데일리DB
    ▲ SK하이닉스 HBM3E 제품 이미지 ⓒ뉴데일리DB
    ◇ 中 메모리와 경쟁 불가피… 첨단 기술 확보한 韓 메모리 승산있다

    하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저가형 AI 시장이 성장하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메모리도 중국산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란 예상도 가능하다. 고성능 메모리는 아직까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10%를 미국 마이크론이 점하는 상태는 맞지만 중국 메모리업체들이 범용 메모리에 이어 AI 반도체 제품까지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안심할 순 없다.

    닛케이아시아 등 외신은 이미 지난해부터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가 중국 최초로 HBM을 개발하기 위한 초기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장비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 장비사들로부터 HBM 생산에 필요한 장비들을 사들이고 관련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전문 인력을 영입하는 등 전방위로 공을 들이고 있다고 알려졌다.

    중국 스타트업에서 저가형 AI가 태동한만큼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저가형 AI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그만큼 자국 메모리를 AI 모델에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딥시크가 엔비디아의 GPU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저가형 모델이 출시되기 시작하면 더 저사양의 GPU와 메모리로도 AI 모델을 구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현지 기업들의 AI 투자가 자국 메모리 수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CXMT가 범용 제품인 DDR4 시장에서 삼성이나 SK 제품 대비 '절반' 가격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해갔듯이 AI 메모리 시장에서도 비교적 낮은 사양 제품을 값싸게 공급해 조금씩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저가형 AI 모델의 탄생으로 중국 AI 시장 뿐만 아니라 메모리 시장까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점치는 이들도 있다.

    중국 메모리사들과의 경쟁이 보다 눈 앞에 닥치긴 했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국가들이 한국산 메모리를 선호하는 현상이 굳어질 수도 있다. 이미 고사양 제품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HBM이 대중화되는 기점이 될 것이란 낙관론이 힘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메모리에서 연산까지 가능한 맞춤형 HBM은 삼성과 SK처럼 최첨단 기술까지 확보한 곳에서나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중국업체들과 차별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맞춤형 HBM은 필요에 따라 메모리단에 여러 기능을 담아 함께 패키징한 제품으로 딥시크와 같은 저가형 AI 모델에도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반도체업계에서도 맞춤형 HBM 기술은 최선단 패키징 기술력까지 갖추지 않으면 구현이 어려운 단계로 보고 중국업체들과 국내업체 간 격차가 가장 큰 분야라고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