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반도체법 정책 디베이트 개최이재명 “안되는 건 천천히 하는 것도 방법”AI 전쟁 번지는데… 정쟁 → 빈손 또 되풀이?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 디베이트'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 디베이트'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내 반도체업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입법 주도권을 쥔 더불어민주당이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R&D) 인력의 주52시간 예외 조항에 전향적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조기 대선 가능성으로 중도층 포용을 위해 기존 생각을 번복할 수 있다는 관측인데, 한시가 급한 업계에서는 시간 끌기로 골튼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제3회의장에서 열린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어떻게’ 정책 디베이트(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전국민적인 국가적 지원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견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 중에 합의되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근로시간 문제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는 “저도 아직 결론을 못냈다”면서 “당내에서도 입장이 워낙 첨예하고, 이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가 있는데 이걸 꼭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냐 합의되는 것부터 먼저 처리하고 합의 안 되는 건 좀 천천히 하고 이러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냐는 입장도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날 토론은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민주당의 당론을 조율하기 위해 개최됐다. 반도체특별법은 정부의 직접 보조금 지원, 반도체 R&D 인력의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 적용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지원과 관련해서는 여야가 모두 법안을 발의하고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지정하는 등 도입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그러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두고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화이트 이그젬션은 반도체 R&D 노동자 중 근로소득 수준과 업무수행 방법 등을 고려해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른 당사자 간 서면합의를 전제로 한다. 

    여당과 업계는 신제품 R&D를 위해 핵심 인력의 6개월~1년 집중 근무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해 주 52시간제에서 배제하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R&D업무가 반도체 업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만큼, 이 같은 예외 조치가 근로기준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찬성 측으로는 김태정 삼성글로벌리서치 상무,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 김재범 SK하이닉스 R&D 담당자,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도입 반대 측 참석자로는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정광현 SK하이닉스 이천노조 부위원장, 김영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지회 수석부지회장, 권오성 연세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기조 발언에서 도입 찬성 측 김태정 상무는 “반도체 산업 중심에는 기술 개발이 있다. 기술 개발의 중심에는 연구자들이 있는데, 어느 순간 연구자들이 시간 기준으로 일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간을 기준으로 연구 개발을 할 때 성과가 나기 쉽지 않다”면서 “연구자들에게 시간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생산과 연구개발 특성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를 해달라”고 강조했다. 

    반대측 기조발언을 맡은 손우목 위원장은 “반도체특별법이 제정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이에 담긴 주 52시간 예외 법안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면서 “지금도 365일 크런치 모드 속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는 상황에서 주 52시간 예외를 논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더욱 강요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조발언 후 이어진 토론에서 양측은 화이트 이그젬션의 도입을 두고 찬성측과 반대측이 치열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김영문 수석부지회장은 “노동 시간을 늘려야만 경쟁력이 확보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면서 “국가가 반도체 산업을 지원한다고 하면서 근로자의 권리 침해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SK하이닉스는 유연 근무제 도입 이후 전체 근로자들의 주 평균 근무시간은 43시간 이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과 같은 제품을 통해서 많은 영업이익을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권석준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상황이 수시로 바뀌고 있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대만 TSMC에는 수시로 지진이 나기 때문에 비상대책반이 있다. 주 52시간을 똑같이 경직되게 지키고자 했다면 복구가 되기 어려웠겠지만 예외적인 상황을 인정해 집중적인 인력 투입, 복구를 위한 미션 등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TSMC는 ‘나이트 워크 프로그램’이 있다. 박사급 인력도 3교대로 돌리면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8개월씩 24시간 체제를 가동한 적이 있었는데, 우려와 비판이 있었지만 성과가 나왔고 이를 노동계와 합리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함으로써 신뢰관계를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권오성 교수는 “현행 근로기준법 체제 내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 그 체제 내에서 모색하는 것이 온당한 태도인 것”이라면서 “반도체라는 특정 산업 사실은 특정 기업을 위해서 근로 기준법의 균열을 내는 그런 시도 자체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태정 상무는 “지금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90%가 출퇴근 시각이 자유로운 1개월 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하고 있다”면서 “다만 52시간 연장 근로 준수라고 하는 측면에서 업무량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월초에는 늦게까지 실험이 가능하지만 월말로 갈수록 근로시간이 부족해서 출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을 한다. 만일 리더급이 출근하지 못하면 진행 방향 결정조차 어려워 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특히 고객이 고객이 갑자기 납기를 당겨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 근로시간 관리를 할 때가 난감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결국 이날 토론회는 그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2시간이 넘는 시간 서로의 입장만을 주장하는 데 그쳤다.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야당이 중도층 포용을 위한 보여주기식 행보에 나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을 넘어, 실용주의 행보로 중도층 확보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토론회 마지막께 “(화이트 이그젬션이) 합의될 때까지 다른 거 다 하지 말고 대기할 필요가 있겠냐, 이 논의를 분리하는 문제도 한번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토의는 계속하되 좀 분리해서 반도체 지원법은 처리하는 것도 한 번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면서 여전히 업계의 요구와 관련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업계 관계자는 “근로시간이 늘어나면 근로자 개인이 받을 수 있는 보상이 늘어나는데 사용자가 노동착취를 한다는 것은 오해이자 왜곡”이라면서 “또한 서면합의를 통해 자발적으로 동의를 받는 만큼 원하는 사람만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업계 관계자도 “딥시크 등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앞날이 불투명한 가운데 정쟁으로 골든타임을 놓칠까 우려된다”면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포함한 반도체 지원은 국가의 경제력 및 미래 성장 동력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