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반도체법 재검토 … 일부 거래 재협상"美 공장 건설 지연·추가 투자 등 가능성 우려삼성·SK 53억 달러 보조금 약정했지만 '안갯속'업계 "K-반도체 대체제 없어 … 뒤집기 쉽지 않을 것"
  • ▲ 포고문에 서명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연합뉴스
    ▲ 포고문에 서명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법에 따른 기업 보조금 책정 기준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반도체업계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투자를 하고 보조금을 받기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서다. 

    1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확정한 반도체법을 재검토해 일부 거래를 재협상할 계획이다. 변경 사항의 범위와 기존 계약에 미칠 영향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 세계 3위 반도체 제조용 실리콘 웨이퍼 생산업체인 글로벌웨이퍼스도 로이터에 “반도체법 프로그램 당국은 우리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및 정책들과 일치하지 않는 특정 조건들이 현재 재검토 대상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글로벌웨이퍼스는 미국 텍사스주와 미주리주에 40억달러(한화 약 5조7700억원)를 투자해 웨이퍼 제조공장을 건설하기로 했으며, 미 정부는 최고 4억600만달러(약 6600억원)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로이터는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백악관이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은 뒤 중국 등 다른 국가로 진출할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보조금 수혜 기업 가운데 중국에 주요 제조시설을 보유한 사례로 인텔,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들었다.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기로 하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약 보조금이 삭감되거나 장기간 지급이 연기될 경우 공장건설이나 운영에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보조금을 받기 위한 추가적인 미국 투자 요구가 생길 수 있으며, 심각할 경우 글로벌 생산망을 다시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업체에 390억 달러의 보조금, 132억 달러의 연구개발(R&D) 지원금 등 5년간 모두 527억 달러(약 76조원)를 지원하는 것으로 조 바이든 직전 행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반도체법 보조금이 무산될 가능성을 우려해 임기 막바지에 대미 투자기업들과 보조금 지급 확정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3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2026년까지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신설하기로 하면서 지난해 12월 미국 상무부와 47억45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최종 계약했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예트에 2028년까지 인공지능(AI) 메모리 반도체용 패키징 공장을 짓기로 하고 미 상부부와 최대 4억5800만달러의 직접 보조금과 5억달러의 대출을 받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기간부터 반도체 보조금에 부정적인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관세를 부과하면 별도의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글로벌 반도체업체가 미국에 생산시설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트럼프 행정부의 산업·무역 정책을 총괄할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도 지난달 29일 미 연방의회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기로 (해외기업들이) 미 정부와 확정한 계약을 이행하겠느냐’는 질의에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며 보조금 지급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미국 빅테크들의 한국산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쉽게 보조금 연기나 관세를 부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현재 미국이 패권을 가져가려 애쓰는 인공지능(AI)의 경우, 국내 반도체업계의 영향력이 크다. 오히려 공장 건설 지연으로 인한 물량 부족, 조달 단가 상승은 미국 빅테크들의 수익성 하락과 AI 기술 발전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변경 사항의 범위 등이 나오지 않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미국 빅테크들의 한국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데다 대체제가 없어 HBM과 같은 첨단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나 보조금 지연은 쉽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