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8일 美 LA서 숙환으로 별세"국내 항공산업 선구자, 재계 큰 어른" 평가오일쇼크 등 위기에서 결단력, 리더십 발휘
  • ▲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 모습. ⓒ대한항공
    ▲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 모습. ⓒ대한항공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이 별세한 지 6주기를 맞았다. 조 선대회장의 과감한 결단력과 리더십은 대한항공이 글로벌 ‘메가 캐리어’로 발돋움하는데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이날 조 선대회장의 6주기를 맞아 경기도 용인시 선영에서 추모식을 열 예정이다. 추모식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주)한진 사장을 비롯해 가족, 그룹사 임원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 선대회장은 지난 2019년 4월 8일(한국시간) 미국 LA 현지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조 선대회장에 대해 “국내 항공·물류산업의 선구자이자 재계의 큰 어른으로 경제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고 평가했다. 

    조 선대회장은 1974년 12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후 45년 이상 항공·운송사업 외길을 걸어온 전문가다.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업무에 필요한 전 분야를 두루 거치며 실무까지 겸비했다. 

    조 선대회장이 처음 대한항공에 발을 들인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인 시기였다. 또한 1978년부터 1980년에도 2차 오일쇼크가 항공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원가를 줄이면서도 시설과 장비 가동을 오히려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항공기 구매도 계획대로 진행해 불황 시기에 호황을 대비했다. 

    이와 같은 결단은 오일쇼크 이후 새로운 기회로 떠오른 중동 수요 확보 및 노선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1997년 외환 위기에서도 조 선대회장의 리더십이 발휘됐다. 당시 대한항공 운영 항공기 112대 중 임차기는 14대였고 대부분 자체 소유 항공기였다. 

    매각 후 재임차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대처했고 IMF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1998년 보잉 7373NG 주력 모델인 보잉 ‘737-800’, ‘737-900’ 기종 27대에 대한 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도 큰 결단으로 꼽힌다. 보잉은 감사의 뜻으로 계약금을 줄이고 금융까지 유리한 조건으로 주선했다. 

    글로벌 항공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 선대회장은 상호협력을 타개책으로 제시했다. 그 시작은 바로 ‘스카이팀(SkyTeam)’의 창설이었다. 

    2000년대 대한항공은 세계적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설립을 주도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등 4개 항공사는 스카이팀을 출범시켰다. 

    아울러 아시아 지역 항공사들을 스카이팀 회원사로 영입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조 선대회장의 노력으로 스카이팀은 170개국 1036개 취항지를 연결하는 글로벌 항공동맹체로 성장했다. 

    조 선대회장이 성장 기틀을 마련하면서 대한항공은 글로벌 메가 캐리어로 도약을 앞두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진그룹 창립 80주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는 분위기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서 ‘통합 대한항공’ 출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41년만에 새로운 CI를 공개하면서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신년사에서 “우리는 통합 항공사 출범을 위한 당면 과제를 수행하며, 백년 기업으로의 기반을 다져나갈 것”이라며 “여러분 모두 우리의 새 이야기를 쓰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선대회장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