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좌초에도 이재명 후보 공약에 포함"양곡법 시행땐 쌀 매입·보관비만 3조 넘어"전문가 "예산·정부 재고 부담 가중될 것" 우려
  • ▲ 한 농민이 곡물건조기에서 벼 이삭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 ⓒ뉴시스
    ▲ 한 농민이 곡물건조기에서 벼 이삭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 ⓒ뉴시스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쌀의 구조적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벼 재배면적 조정제'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어서다. 앞서 양곡법 개정안은 산지 쌀값 하락과 막대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정부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국회 회기 만료 등으로 세 차례 폐기된 바 있어 논란을 빗겨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번 대선 공약에 양곡법 개정을 통해 쌀값 적정가격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재명 후보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양곡법을 개정해 논 타작물 재배를 늘리고 쌀과 식량작물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했다. 

    대선후보 첫 TV 토론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쌀값을 일정 가격으로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곡물자급도를 올리는 일"이라며 "가끔 (쌀이) 과잉 생산되는데 정부가 사서 가격을 관리해주고 대신 경작 면적 조정을 통해 대체 작물 지원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공식 공약집에 양곡법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국민의힘은 그동안 양곡법 개정안에 줄곧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도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준석 후보는 양곡법과 대체작물 지원 제도 도입을 주장한 이재명 후보를 향해 "결국 3조원씩 더 쓰겠다는 말을 돌려서 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쌀값이 평년 수준 아래로 떨어질 경우 정부가 농가에 차액을 보상하고 초과 생산된 쌀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양곡법 개정안을 추진해 왔다. 개정안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했다. 양곡법 개정안은 윤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기도 하다. 

    정부는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할 경우, 쌀 공급 과잉 문제를 고착화하고 국가 재정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줄곧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양곡법을 두고 '농업을 망치는 법'이라는 의미로 ‘농망법’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정부 비축 물량 등으로 쌀 매입비에 1조2266억원, 보관비로 4061억원 등 총 1조6327억원을 투입했다. 만일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2030년 매입비가 2조6925억원으로 늘어나고 보관비는 5338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입비와 보관비를 합한 비용만 3조2263억원으로 3조원을 훌쩍 넘어서리란 계산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양곡법이 시행될 경우 정부가 2030년까지 초과 생산 쌀 매입에 투입해야 할 예산이 연평균 9666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쌀 의무 매입 비용도 2027년에는 1조1872억원, 2030년 1조4659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농경연은 또 과잉 쌀 공급 규모가 현행 제도 하에서는 연평균 20만1000톤 수준이지만, 개정안 시행 시 연평균 43만2000톤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복적으로 양곡법에 반대 입장을 피력해온 정부는 쌀의 근본적 공급 과잉 문제 해결을 위해 올해 8만 ha 규모의 벼 재배 감축을 목표로 조정제를 추진 중이다. 올해 8만ha를 감축하면 쌀 생산량은 전년보다 40만톤(t)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쌀 수요가 공급보다 가파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실제 1인당 쌀 소비량은 줄곧 내리막이다.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평균 55.8kg으로 2015년 62.9kg 11.3% 줄었다. 향후에도 쌀 소비 감소세는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다. 

    아직 벼 재배면적 조정제 신청 규모는 공식 발표 되지 않았지만, 농가 반발이 이어지고 있고 민주당이 양곡법 재추진을 공약하며 정책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어 정책 목표 달성도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쌀 소비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남는 쌀을 사들이는 것이 쌀 초과 생산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양곡법이 추진되면 벼 재배면적 조정제가 동력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쌀 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국내 농업의 가장 큰 문제인데, 양곡법이 시행되면 농가가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유인이 줄어들어 이 문제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며 "쌀은 높은 기계화율과 수익성으로 농가 최선호 작물이어서 양곡법이 시행되면 벼 재배 비중이 더욱 늘어나 예산과 정부 재고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