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출범에 사실상 '브레이크' 사라진 양곡관리법통과 땐 벼 농사 포기 유인 사라져 과잉공급 우려 커재정 부담도 '뇌관' … 전문가 "제도 보완 필요성" 지적
-
- ▲ 부산 강서구 일원 논 전경.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또다시 들고 나왔다. 윤석열 정부에서 두 차례나 대통령 거부권에 막혔던 법안을 정권이 바뀌자마자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의 골자는 간단하다.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그 차액을 보전하고 남는 쌀은 사들이라는 것이다.11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권 교체와 동시에 윤석열 정부 시절 두 차례 대통령 거부권으로 무산됐던 법안을 다시 들고 나온 셈이다. 해당 법안은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박희승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핵심은 쌀, 보리 등 양곡 가격이 공정가격(기준가격) 미만으로 떨어지면 정부가 차액을 농민에게 보전해주는 '가격안정제' 도입이다. 또 양곡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등하면 정부가 초과생산량을 사들이거나 정부관리양곡을 판매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양곡수급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양곡의 수급안정을 위한 정책 수립과 시행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도록 했다.국민의힘도 지난 9일 미곡 의무매입을 강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미곡 가격이 평년보다 7% 이상 하락하거나 하락이 예상될 경우 정부가 격리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다만 민주당 안과는 달리 양곡가격안정제는 빠져 있다. 국민의힘은 양곡가격안정제가 자유시장경제에 반하고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보조금 감축에도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이 대통령의 당선으로 양곡관리법은 사실상 '브레이크'가 사라졌다.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만큼, 법안은 별다른 견제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해당 법안이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만큼, 대통령 거부권도 사실상 없어진 카드가 됐다.이와 관련,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쌀값 정상화법(양곡관리법)은 민주당이 야당 시절 강력하게 추진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최종 입법에 성공하지 못한 민생법안들"이라며 "민주당은 이 법안들을 다시 추진할 방침이다. 이제는 거부권에 가로막힐 일은 없을 테니 입법이 성공할 것이다"고 자신했다.문제는 이 법이 시행되면 대규모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쌀 매입에 1조2000억원 이상을 투입했고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 2030년에는 그 비용이 연간 3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산한다.결국 수요를 훨씬 웃도는 쌀을 국민 세금으로 사들여 장기간 보관하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밀어붙였던 이 법안이 정권을 인수한 이재명 정부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양곡관리법이 시행될 경우 막대한 예산 부담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농경원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하는 데만 2030년까지 연평균 9666억 원을 투입해야 하고, 의무 매입 비용은 2027년 1조1872억원, 2030년에는 1조4659억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더 큰 문제는 쌀이 남아도는 규모 자체가 두 배 이상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연평균 20만1000톤 수준이던 과잉 공급이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 43만톤을 넘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수요는 제자리인데, 세금으로 남는 쌀을 계속 사들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정권 교체로 여야의 입장이 바뀌면서, 과거 야당(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밀어붙였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이제 여당의 입장에서 재정 부담이라는 현실 앞에 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서진교 GSnJ 인스티튜트 원장은 "양곡관리법은 농가의 과잉 생산을 부추길 수 있고 이미 과잉 상태인 쌀 공급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이유로 비판이 있었던게 사실"이라며 "현실적으로 정부가 초과 생산분을 모두 의무 매입하는 건 부담이 커 양곡관리법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내다봤다.이어 "가격안정제를 제외하지는 않겠지만 양곡관리법에 명시된 '양곡수급관리위원회'에서 객관적 기준을 갖고 결정하게 한다면 정치적 개입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급 과잉을 억제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고, 매입의 기준 가격이 평년 가격과 같은 객관적 기준으로 설정되지 않는다면 과거의 변동직불제와 다를 바 없어 시장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 중인 벼 재배면적 조정제도도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양곡관리법은 이전 정부가 추진해온 쌀 과잉 생산 억제와 타작물 전환 정책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양곡관리법은 쌀 공급 과잉이나 가격 급변 시 정부의 초과 생산량 의무 매입이 핵심으로, 고령화된 농촌에서 기계화율 100%에 달하는 벼 농사를 포기할 유인이 사라져 벼 생산을 계속하거나 늘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불거진다.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 논의와는 별도로, 벼 재배면적 조정 제도 등을 통해 쌀 생산 면적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공급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수급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농식품부 관계자는 "벼 이외 타작물로의 전환을 통해 구조적으로 공급을 조절하자는 것"이라며 "현재 운영 중인 전략작물직불제의 직불 단가 인상, 품목 다양화 등의 방식으로 타작물 전환을 유도하고 쌀 생산의 적정면적을 유지, 관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