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E, HBM·DDR5 등 첨단 칩 기술 대상 줄소송韓기업, 특허소송 피소 10건 중 8건이 NPE 發이겨도 상처만 … 소송비용 수백억원 넘나들어中, 기술 보험 내놓기도 … 우리정부도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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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AI) 시대 개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특허 소송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허 괴물’로 불리는 비실시특허관리기업(NPE)의 공세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어 적극적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NPE의 잇따른 소송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NPE는 특허를 활용해 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하지 않고 특허 관련 소송을 유일한 수익모델로 삼는 사업자를 말한다. 통상 특허 괴물이라 불린다. 특허법 시장이 활성화돼 특허권 매물이 많은 미국이 주된 활동 무대다. 

    과거에도 NPE는 국내 기업을 타깃으로 삼아 소송 공세를 펼쳐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더블데이터레이터(DDR5) 등 고부가가치 첨단 반도체 기술을 대상으로 한 소송을 늘려가고 있다. AI 시대 개화로 관련 반도체 특허가 중요해지면서 NPE들이 공격적인 활동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특허청이 지난해 발표한 ‘2023 지식재산 동향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미국 내 발생한 국내기업의 특허소송 가운데 NPE에 의한 피소율은 76.2%에 달했다. 제기당한 소송 10건 중 7~8건이 NPE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산업분야별로 보면 전기·전자가 85건으로 전체 미국 특허소송의 79.4%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 특허 괴물 넷리스트의 표적이 됐다. 넷리스트는 LG반도체 출신인 홍춘기 대표가 미국에 설립한 서버용 메모리 모듈 기업이다. 양사는 과거 2015년 특허 교차 사용 계약을 체결하는 등 협력관계였지만 넷리스트의 일방적 계약 해지 이후 소송을 통해 삼성전자를 몇 년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최근 넷리스트는 미국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HBM(HBM2, HBM2E, HBM3, HBM3E)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의 D램을 수직으로 쌓는 기술(적층형 어레이 다이와 드라이버 부하 감소)을 삼성전자가 침해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넷리스트가 보유한 HBM 관련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소송을 제기하며 맞대응에 나선 상태다. 

    삼성전자는 미국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을 통해 “넷리스트가 특허 무효 판정에도 불구하고 연속 특허를 이용해 반복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삼성전자가 특허를 직간접적으로 침해하지 않았으며 손해배상 또는 금지명령 구제에 대한 책임이 없음을 선언해달라”고 밝혔다. 

    연초 SK하이닉스도 미국 어드밴스드 메모리 테크놀로지스(AMT)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다. AMT는 알려진 부분이 거의 없는 업체로, 업계에서는 NPE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SK하이닉스가 플래시 메모리 모듈 관련 특허 4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DDR5와 소비자용 SSD ‘P31’ 등 제품이 특허를 침해했는데, 이러한 제품을 팔아 미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는 것이다. AMT는 지난달 소장을 한 차례 수정한 상태다. 여기에는 SK하이닉스의 고객으로 알려진 AMD, 델,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와 관련한 광범위한 재판지 주장이 담겼다. SK하이닉스는 내부적으로 관련 전략을 세우는 등 적극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AI 시대 개화로 반도체가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간주되고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관련 특허 분쟁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강국인 한국의 기업들은 주요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기업들의 반도체 특허출원은 2020년 이후 지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전세계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 지식재산권(IP)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과 상반되는 분위기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주요국의 반도체 전략에 따른 반도체 산업의 지재권 경쟁력 강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對) 중국 수출 통제가 시작된 2019년을 기점으로 미국·대만·일본 등 해외 반도체 기업의 특허 출원 건수는 증가했다. 특히 대만과 일본의 반도체 기업의 특허 출원건수는 2015년 이후 가파르게 증가해 두 배 이상 늘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특허 출원 건수는 2020년을 기점으로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5년 1만2691건이던 반도체 관련 특허 출원 건수가 2020년 1만5310건으로 늘었지만 이후 지속 감소해 지난해 1830건에 그쳤다. SK하이닉스 또한 2015년 2246건의 반도체 관련 특허를 출원한 이후 2020년 2967건까지 확대됐으나 지난해 특허 출원 건수는 176건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에 따라 당분간 첨단 메모리에 대한 특허 분쟁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남는 건 상처 뿐”이라면서 “미국의 특허침해 소송은 일단 시작하면 수십억원에서 수백원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모두, 속도가 중요한 반도체 기업에게는 큰 부담”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기업의 해외 지식재산권 보호 부담을 덜어주고 NPE와의 특허 분쟁에 대응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해줘야 한다”면서 “중국의 경우 자국 보험사와 협력을 통해 핵심 기술을 보호하는 보험을 내놓고 관련 침해 분쟁시 직접적 경제 손실 등을 보장하고 있다. 핵심 기술의 경우 매각 기술과 기업을 한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