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 라피더스에 11조 추가 지원美, 한국 투자 유치로 반도체 역량↑한국·대만 역할 美·日 넘어갈 수도
  • ▲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자료사진 ⓒ삼성전자
    ▲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자료사진 ⓒ삼성전자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대만 기업의 투자를 대규모로 흡수하며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일본은 한때 세계 최강이었던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겠다며 수십 조 원의 재정 지원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하면서다. 

    인공지능(AI)·양자컴퓨팅 확산으로 첨단 제조 역량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주요국 간 '반도체 대전'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 日 정부, 라피더스에 11조 추가 지원

    일본 정부는 최근 정부-민간 합작 파운드리 기업인 라피더스(Rapidus)에 1조1800억 엔(약 11조1000억 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미 책정된 1조7000억 엔을 포함하면 누적 지원액은 2조9000억 엔(약 27조3000억 원)에 달한다. 라피더스가 정부에 제출한 실행 계획에 따라 일본은 2027 회계연도 하반기부터 2나노미터(nm)급 차세대 반도체의 대량 생산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31년 전후에는 주식시장 상장도 추진한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던 일본은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 이후 가격 규제와 시장 개방 압박을 받으며 빠르게 경쟁력을 잃었다. PC·모바일 중심으로 구조가 전환된 1990년대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대만 TSMC가 공격적 투자로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일본의 점유율은 2019년 기준 10% 미만까지 추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공급망 단절과 대만해협을 둘러싼 지정학 리스크가 부각되자 일본 내 위기감이 커졌고, 이후 정부는 보조금·세제 혜택을 앞세워 반도체 산업 재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라피더스는 도요타, 소니, 키옥시아 등이 참여한 민관 합작 법인으로 2022년 8월 설립됐다. 불과 3년 만에 2nm 칩 양산을 목표로 세우는 등 첨단 공정에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일본 정부는 1.4nm급 차세대 칩 생산까지 염두에 두고 있으며, 누적 투자액은 7조 엔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외신들은 “일본 기업의 제조 기술은 한국·대만 대비 약 20년 뒤처져 있다”며 양산 전환 과정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는 것이 최대 난제로 꼽힌다고 분석했다. 시장 지배력이 압도적인 삼성전자·TSMC와 경쟁해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성이 크다.

    ◆ 美, 한국 투자 유치로 반도체 역량↑

    미국은 해외 투자를 대규모로 유입시키며 반도체 생산 역량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23일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가 발표한 그린필드 해외직접투자(FDI)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코로나 이전 대비 무려 30배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이 한국과 대만의 해외투자 가운데 약 90%를 받아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해외투자는 코로나 이후 연간 630억달러로 54% 증가하며 글로벌 평균 증가율(24%)을 2배 넘게 웃돌았다. 같은 기간 중국향 투자는 92% 급감한 반면 북미향 투자는 570%나 폭증했다. 이에 따라 한국 FDI 중 미국 비중은 10%에서 45%로 급등했고, 중국 비중은 21%에서 1%로 급락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현지 생산과 공급망 안정성 확보를 위해 미국 투자를 대폭 확대한 결과다.

    미국은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제조 설비를 미국 내로 끌어들이는 ‘리쇼어링’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CHIPS법을 통해 보조금·세액공제를 대폭 지원하면서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주요 제조사들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맥킨지는 미국이 2030년대 초반 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량의 2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대만이 65%, 한국이 25%를 담당하는 구조가 미국·유럽·일본 중심으로 빠르게 분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기업의 북미 내 반도체·배터리 투자는 코로나 이전 대비 약 11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시설을 구축하는 등 현지 투자는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한국으로의 FDI 유입 또한 증가했는데, 미국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관련 대형 투자가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글로벌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올 3분기 기준 6조원이 넘는 법인세를 납부했다. 지난해 보다 9배가 넘는 수준으로 삼성전자는 1조8860억원을, SK하이닉스는 4조3440억원을 각각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