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연구팀, 유전자 특성 유지하는 오가노이드 개발치료 패러다임 전환 예고 … 정밀 예측 시대로 방승민 교수 "맞춤형 항암제 선택 넘어 반응 예측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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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브란스병원
    항암제가 잘 들을지 아닌지, 이제는 직접 써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특히 '암 중의 암'으로 불리는 췌장암에서 이 같은 정밀 예측이 가능해지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던 신약 개발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고 있다.

    11일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방승민·임가람 교수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김진수 조교는 환자 유래 췌장암 세포를 이용해 본래 유전적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실제 항암제 반응까지 정밀하게 재현 가능한 3차원 오가노이드(organoid) 모델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암 생물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중 하나인 분자 암(Molecular Cancer, IF 27.7) 최신호에 게재됐다.

    ◆ 신약 개발 '골든 타임' 앞당기는 열쇠

    오가노이드는 환자 조직으로부터 유래된 세포를 실험실 환경에서 배양해 만든 ‘미니 장기’다. 줄기세포나 종양세포를 기반으로 하여 장기의 형태와 기능을 유사하게 모사할 수 있어, 전임상 연구와 정밀의료 구현을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오가노이드 모델은 명확한 한계를 지녔다. 배양 환경에 첨가되는 성장 인자 등 외부 인위적 요인으로 인해 세포가 본래 갖고 있던 유전적 특성이 변질되거나, 단일 약제에 대한 반응 예측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실제 임상에서 흔히 쓰이는 복합 항암제 조합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최근 10년간 확보한 환자 유래 췌장암 세포주를 분석하고, 성장 인자 없이도 장기 배양이 가능한 새로운 오가노이드 배양 플랫폼을 설계했다. 그 결과, 실험실에서 배양한 오가노이드가 환자의 종양과 거의 동일한 유전적 특성과 약물 반응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방승민 교수는 “이번 모델은 기존 오가노이드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한 것은 물론 복합 항암요법에 대한 반응까지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약 개발과 정밀의료의 실질적 진전을 이룬 사례”라며 “환자 맞춤형 항암제 선택뿐 아니라 전임상 단계에서 임상 반응을 선별할 수 있는 모델로 기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3차원 오가노이드(organoid) 모델 연구. ⓒ분자 암(Molecular Cancer, IF 27.7)
    ▲ 3차원 오가노이드(organoid) 모델 연구. ⓒ분자 암(Molecular Cancer, IF 27.7)
    ◆ "치료까지 10년" … 췌장암 신약 개발의 현실적 벽 돌파 

    췌장암은 대표적인 난치암이다. 5년 생존율은 10% 수준에 불과하고, 환자의 80% 이상이 이미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진단을 받는다. 1차 항암제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면 생존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이처럼 공격적인 암종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개발된 약물은 한정적이고 임상시험 실패율은 높다.

    이는 췌장암의 불균일한 유전적 특징과 함께 '시험해볼 수 있는 모델'이 없다는 점도 큰 걸림돌이었다. 약물 반응을 예측할 바이오마커가 없기 때문에 약제 선택은 환자의 임상 상태나 의료진의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고 이를 환자에게 적용하기까지 평균 10~15년의 시간이 소요되며, 실패율도 높다.

    이번에 개발된 오가노이드 모델은 이 같은 병목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솔루션으로 평가받는다. 약물 후보 물질의 전임상 단계에서 실제 환자의 유전자 특성을 반영한 세포에 바로 적용해 효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낮은 약물을 조기에 걸러내고 유망 후보물질은 임상시험 단계로 빠르게 이행시킬 수 있다.

    임가람 교수는 "이번 기술은 환자의 개별 반응을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는 도구이자,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의 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도약점"이라며 "임상시험 성공률을 높이고 개발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자 정보 기반의 치료 전략이 환자에게 적용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오가노이드는 이행 가능한 중간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 세포 수준에서의 반응 예측이 현실화되면, ‘한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치료제’를 사전에 선택해 적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번 연구 성과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환자 치료와 제약 산업 모두에 의미 있는 혁신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