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인프라 공격 '중동 에너지 전쟁' 신호탄국제유가 출렁 … 확전 시 배럴당 150달러 경고국내 정유업계 비상 대응 … 정부와 공동 대응
  • ▲ 미국 텍사스 칸스카운티 칸스시티 인근에서 시추를 멈춘 펌프 잭 뒤로 해가 지고 있는 모습.ⓒ뉴시스
    ▲ 미국 텍사스 칸스카운티 칸스시티 인근에서 시추를 멈춘 펌프 잭 뒤로 해가 지고 있는 모습.ⓒ뉴시스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로 국제 원유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번 사태는 중동 지역에서 ‘에너지 전쟁’이 시작될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 분쟁이 확대될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또는 그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위기감 속에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도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해 긴급 논의에 나섰다.

    17일 중동 매체 알자지라(Al Jazeera)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사우스파르스(South Pars) 가스전과 수도 테헤란의 주요 석유 저장소 등 핵심 에너지 시설을 공격했다. 

    이는 두 국가 간 수십 년간 갈등이 있었지만, 에너지 인프라를 직접 타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공격을 이스라엘이 이란의 에너지 인프라를 정조준한 전례 없는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란도 즉각 보복에 나서며 이스라엘 석유화학 기업 바잔(Bazan)의 정유공장과 송유관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WSJ와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번 공격은 ‘중동 에너지 전쟁의 신호탄’으로 평가했다. 에너지 인프라가 새로운 전장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양국의 충돌이 더욱 격화할 경우 국제유가 급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FT는 세계은행(World Bank)을 인용해 “중동 분쟁이 확대될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또는 그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란은 세계 2위 천연가스 매장량과 세계 3위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 수송 병목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3분의 1이 지나는 핵심 경로여서다.

    최근 중동 사태로 인해 60달러대에서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이스라엘 공격 직후 지난 13일부터 급등세로 돌아섰다.

    지난 16일 기준 국제유가는 두바이유 배럴당 72.9달러, 브렌트유 73.23달러, WTI 71.77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충돌 전인 12일 대비 각각 4.33달러(+6.3%), 3.87달러(+5.6%), 3.73달러(+5.5%) 상승한 수준이다.

  • ▲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한 시민이 차량에 주유를 하고 있다.ⓒ뉴시스
    ▲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한 시민이 차량에 주유를 하고 있다.ⓒ뉴시스
    국내 정유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며, 공급망 리스크 논의에 돌입했다. 국내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원유 수급 차질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원유 수입선 다변화, 비상 재고 운용, 대체 항로 확보 등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비상 대응책을 마련해두고 있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정제마진 상승으로 업황 개선 효과도 기대되지만, 장기적으론 고유가로 인한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되면 정유·석유화학 업계 실적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유관기관과 긴급회의를 열고 수급 현황과 유가 영향을 점검했다. 국내 유가 안정화를 위해 현재 시행 중인 유류세 인하 조치도 8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현재 휘발유 유류세는 리터당 82원, 경유는 87원, LPG 부탄은 30원 낮아진 상태다.

    이번 사태로 국제유가 급등분은 1~2주 시차를 두고 국내 유가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국제유가 반등 영향으로 서울 휘발유 가격도 리터당 1700원을 넘어섰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정부와 업계가 공동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2023년에도 산유국 감산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했을 때 정유업계와 긴밀히 협력해 가격 급등 완화에 나선 바 있다. 당시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89.03달러까지 치솟았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 “호르무즈 해협 등 주요 석유 수송로가 실제로 막힌 사례는 거의 없어 당장 원유 공급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낮고, 정부와 민간에서 약 200일분 가량의 석유 비축량을 확보해 단기 수급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 유가에 반영되는 데 2~3주의 시차가 있어 당장 내일부터 기름값이 오르기는 어렵지만, 2~3주 후에는 국내 기름값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