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산업, 6월 중순 1000원대 봉지라면 '맛나면' 출시 李 대통령 '라면값 2000원' 발언 직후 '눈치보기' 지적도 업계·전문가 "인위적으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정책"
  • ▲ 하림산업이 새로 출시한 '맛나면'ⓒ쿠팡 캡처
    ▲ 하림산업이 새로 출시한 '맛나면'ⓒ쿠팡 캡처
    이재명 대통령의 '라면값 2000원' 발언 파장이 유통업계에 일파만파 퍼지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 발언으로 정부가 가공식품 기업 담합 조사 등에 속도를 낼 것으로 알려지며, 식품기업들은 잔뜩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일부 기업은 즉시 1000원대 저가 라면을 내놓으며 '눈치 마케팅'에 나서기도 했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하림산업은 6월 중순 1000원대 봉지라면 '맛나면'을 출시했다. 

    6월9일 이 대통령 '라면값 2000원' 발언이 채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2차 비상경제점검TF(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인가"라며 가공식품 물가 문제를 꼬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공식품 물가 현황 파악과 대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선 상황. 
     
    하림산업은 '더미식' 등 브랜드를 통해 중고가 라면 등 가공식품들을 잇달아 출시하고 일명 '프리미엄 마케팅'을 지속해온 기업이다.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더미식 장인라면(봉지면)'은 1개 정가가 2200원에 달한다. 장인라면과 오징어라면 컵라면 가격은 1개에 2800원이다. 일반 라면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출시 당시 고가 논란이 있었으나, 하림산업은 "프리미엄 라면을 표방하는 만큼 좋은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다"며 자부심을 표했다. 

    반면 최근 등장한 '맛나면' 가격은 112g 4개 묶음 기준 4800원으로, 쿠팡에서는 할인가 4080원에 팔리고 있다. 개당 가격이 약 1000원꼴인 셈이다. 

    하림산업 관계자는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라면을 내고 있었고, 그 일환"이라며 "단지 가격대에 초점을 맞춰 낸 제품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더미식'과 달리 '맛나면'의 경우 조금 더 대중적으로 소비자 선택을 다양화하기 위해 출시한 제품"이라는 입장이다. 
  • ▲ 장인라면 1개 가격은 2200원에 달한다. ⓒ하림산업 홈페이지
    ▲ 장인라면 1개 가격은 2200원에 달한다. ⓒ하림산업 홈페이지
    하지만 업계에서는 프리미엄 마케팅을 고집하던 하림산업의 급작스러운 저가 라면 출시를 물가 트렌드, 정부 기조와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시선이다. 

    한 라면업계 관계자는 "물론 신제품을 준비하기까지 최소 1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맞지만, 정부 기조에 맞춰 저가에 초점을 맞춘 제품을 낸 것이 아닌가 싶다"며 "'맛나면' 이름만 봤을 때 어떤 '맛'을 상상하기 어렵고, '저렴하게 나온 라면이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털어놨다. 

    다른 라면업계 관계자는 "라면은 '맛'에 콘셉트가 있어야 소비자 수요가 커지는 품목인데, 본질적인 부분 없이 단순히 가격에만 초점을 맞춘 제품은 출시에 의미가 없고 결국 소비자가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맛나면'이 사실상 완전한 저가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또 다른 라면업계 관계자는 "이미 대다수 라면 기업들의 대표 제품은 마트, 온라인 등에서 초저가에 할인 중인데, '맛나면' 가격은 이에 비해 월등히 저렴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날 기준 삼양식품의 '삼양라면(봉지면)'은 쿠팡에서 120g 5개가 3310원에 팔리고 있다. '신라면(봉지면)' 120g 5개는 4070원에 판매 중이다. 개당 가격이 각각 1000원 미만인 셈이다. '맛나면' 중량은 112g으로, 개당 가격이 1000원 꼴인데, 중량에 비해 가격이 여타 인기 라면에 비해 비싼 편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결국 하림산업이 '보여주기식' 저가 라면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정부 기조일 것"이라며 "정부의 시장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숨 쉬었다. 

    이어 "실제 정부에서 유통별 봉지면 판매가와 할인행사 폭, 빈도 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조금 더 시장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 라면 시장은 가격 규제와 시장 포화로 해외에 비해 성장이 둔화된 상태"라고 꼬집었다. 

    조동준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부의 라면 등 가공식품 시장 개입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조 교수는 "완전경쟁시장의 전형적 예가 저가 식품으로, '가격이 비싸다'고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시장 자율조절기능에 의해서 가격과 품질, 수량이 결정되는데, 저가만을 강요했을 때는 기업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어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없애는 꼴이 된다"며 "인위적으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