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봉합 수순 … 교수·전공의 신뢰 복원 시도환자 고통은 불신으로 확장 … 재발하면 어쩌나 우려 복귀하면 필수의료·저수가 개선 등 의료개혁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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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5개월간 이어진 의료공백 사태가 의대생 전원 복귀 선언으로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국회 교육·복지위원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입장문'에 따라 전국 의대생들은 교육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전공의 복귀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복귀라는 '카드'가 등장했다고 해서 의료정상화가 실현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첫 발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 필수의료 살리기, 수련환경 개선은 물론 잃어버린 '환자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놓치면 반쪽짜리 봉합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 복귀 선언 이후 바뀐 분위기… 교수·전공의와의 관계 회복 시도

    이번 복귀 선언은 1년 넘게 등교 거부와 국시 포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이어온 의대생들의 공식적인 '복귀 결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장의 분위기도 변화하고 있다. 거리를 두던 교수와 학생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사제 간 신뢰를 복원하고 수련·교육 정상화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은 "전 정부 시절 무너졌던 신뢰 관계를 국회 교육·복지위원장 등과 장기간 대화를 통해 회복해왔다"며 복귀 선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 "압축이나 날림 없이 제대로 교육을 받겠다. 방학 기간 조정 등 합리적 복귀 방안을 건의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의 복귀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복귀를 위한 전공의들의 요구는 명확하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료개혁 실행 방안 재검토, 수련 연속성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 김민석 총리 "큰 일보 전진" … 정은경 청문회가 시험대

    김민석 국무총리는 13일 "의대생 복귀 선언은 큰 일보 전진"이라고 평가하며, 의료계와 정부, 국회가 협력해 의료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계와 국회가 의대생 복귀를 선언하고 정부의 협조를 구했다. 결실의 길을 찾겠다"며 "대통령께서도 해법을 계속 숙고해 오셨고, 주술 같은 2000명 밀어붙이기의 고통이 모두에게 컸다"며 향후 실질적 해법 마련에 나서겠다"는 입장도 냈다.

    하지만 김 총리가 틀을 짜겠다고 선언한 의료 정상화 로드맵의 구체적 청사진은 결국 복지부 장관 몫이다. 오는 18일 예정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그 시험대다.

    이에 따라 정 후보자는 의료계-정부-국회가 합의한 복귀 이후, 필수의료 강화, 수련환경 개선, 저수가 구조 개편 등 의료 정상화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김 총리가 "더 깊이 살펴볼 시간"이라며 조정 국면을 예고했지만, 정 후보자의 청사진 없이는 의료계와 국민을 설득할 동력이 부족하다. 이번 청문회는 단순한 인사 절차가 아닌 향후 의료정상화 정책 방향의 현실성과 의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 "제대로된 사과도 없이" … 희생양이었던 환자는 어디에 

    복귀 선언과 정부의 긍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환자단체와 국민 사이에서는 사과 없는 복귀에 대한 비판이 여전하다.

    분명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모든 갈등의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환자들이다. 환자의 설움과 고통을 봉합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복귀와 합의도 진짜 봉합이 될 수 없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복귀는 환영하지만 의료계가 이번 사태로 발생한 국민 피해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며 "이는 의료인의 윤리와 공공적 책무에 대한 인식 부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의대생들은 1년 넘게 수업을 거부하고 의사국가시험을 포기하며 환자와 국민을 협상의 수단으로 삼았다. 특히 필수의료와 응급의료 현장에서의 인력 이탈로 인해 중증질환자와 응급환자가 치료 기회를 놓치고 생명을 위협받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새 정부에서 의정 사태 봉합만을 위해 환자의 의견을 배제한 채 경주하는 것은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복귀 과정에서의 '특혜' 논란을 우려하고 있다.

    환연은 "특정 집단에만 특혜를 주는 방식은 이미 복귀한 이들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며 "복귀 선언이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모든 과정이 공정하고 일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복귀 이후 남은 5대 숙제 … 갈 길 멀었다 

    ① 수련·교육 정상화
    의대생 복귀 선언 이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유급자, 제적자 등 학사 운영의 정상화다. 교육부와 각 의대는 "성적 사정은 원칙대로, 교육의 질을 저해하지 않는 복귀 방안을 찾겠다"며 학사 유연화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공의 복귀 논의도 진행 중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필수의료 정책 재검토와 수련 연속성 보장"을 요구하며 복귀 협의에 나섰지만, 입영 유예 등 현실적 문제로 전면 복귀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② 필수의료 강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었던 필수의료 붕괴 문제는 복귀 이후에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다. 정부와 의료계는 ▲ 지역의료 격차 해소 ▲ 응급·분만 등 필수 분야 인력 확보 ▲ 수가 인상 등 구조적 해법을 놓고 협의가 불가피하다.

    ③ 저수가 구조 개선
    저수가 구조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의료계는 "수가 정상화 없이 공급 확대는 또 다른 왜곡만 낳는다"고 경고한다.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④ 공공의대 재논의
    이재명 정부는 공공의대·지역의대 설립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의료계는 다시 정원 확대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며 경계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공공의대 재추진이 또다시 갈등 불씨가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⑤ 환자 신뢰 회복
    환자 신뢰 회복 없이는 의료정상화 논의 자체가 공허해질 수 있다. 당장 의대생과 전공의의 복귀가 있다고 해도 추후 논란이 촉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환자단체는 "다시는 환자를 볼모로 삼지 않겠다"는 의료계의 공식적 약속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의정 사태가 재현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건강권을 위한 가장 기본적 요구다. 

    ◆ 복귀 시작일 뿐 … 올바른 의료 생태계 만들어야

    복귀는 시작일 뿐이다. 환자의 신뢰와 필수의료 복원 없이 '정상화'를 말하긴 이르다. 의료계와 정부, 그리고 환자단체가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뗐을 뿐이다.

    특히 이재명 정부에서 드라이브를 걸 공공의대, 공공의료 강화 시각을 유지한 채 봉합을 말하는 것은 갈등의 2라운드가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가 내포됐다. 이를 내려놓을 각오가 없는 봉합은 쇼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의료계는 소신 진료를 위한 소송 부담 완화, 필수의료 수가 개선 등 의료개혁의 방향을 놓쳐서는 안 된다. 복귀 이후 정상화를 서두르되 의료개혁의 원칙과 방향성만큼은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야 한다는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