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 금융위 해체 원안 보고…금소원 신설까지 강행 논란실용주의 외치더니 표리부동 조직해체…내부 뒤숭숭 "뒤통수 맞았다"해외서도 실패한 금정 분리 실험 반복하는 꼴…"실용정부 맞나" 비판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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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챗GPT
    "금융위는 조용히 일 잘하는 조직입니다."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실용적 금융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7월 공식 석상에서 두 차례나 공개 칭찬한 금융위원회가 불과 한 달 만에 '사실상 해체' 위기에 놓였다. 국정기획위원회 주도의 일방적인 조직 개편안이 실패한 '금정(금융정책) 분리'를 재현할 수 있다는 논란 속에 금융당국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겉으로 표방하던 실용주의가 무색한 표리부동(表裏不同)에 불과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칭찬 끝에 결론은 해체?… 금융위, 내부 자조 확산

    국정기획위원회가 보고한 개편안은 금융위의 기능을 양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금융정책은 기획재정부와 통합된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감독 기능은 신설될 '금융감독위원회'에 흡수되는 구조다. 사실상 금융위를 정책·감독 양측에서 쪼개는 방안이다.

    그간 금융위는 내부적으로 조직 개편 논의에 침묵을 지켜왔지만, 개편안 발표 이후 "이 정도면 뒤통수"라는 말까지 나오는 분위기다.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도 "청와대에서 달래기용으로 칭찬만 하고 뒤로는 폐지를 준비해온 것 아니냐"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실제로 금융위는 6·27 고금리 대출 조치나 서민금융 공급 확대 등에서 이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를 받으며 정책을 집행했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공로의 끝은 감사가 아닌 '해체 통보'를 받으면서 "대통령 말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두 번이나 공식 석상에서 치켜세운 조직을 내부와 협의 없이 해체 수순을 밟는 건 조직에 대한 예의도, 정책적 신뢰도 없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 금감원도 뒤숭숭… 금소원 신설 "소비자 보호 훼손"

    금감원 내부도 뒤숭숭하긴 마찬가지다. 국정기획위원회는 금감원 산하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금감원은 금융사 검사만 맡고, 민원 처리는 별도의 금소원이 담당하게 되는 구조다. 

    이는 참여정부 시절 폐지된 재정경제부 모델을 사실상 되살리는 것으로,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책과 감독의 이원화로 인한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현재는 검사-민원 업무를 병행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지만, 기능 분리는 현장 대응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크다.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대통령 직속 혹은 정권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관치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감원 직원 1500여 명은 앞서 국정기획위에 개편 반대 호소문을 제출했지만, 아무런 반영 없이 원안이 대통령에 보고되면서 반발이 거세다.

    ◆ 해외선 실패한 구조 "분리형 모델 위기 시 효율적 대응 어려워"

    일각에서는 이번 개편안을 '선진국형 분리 모델'로 포장하지만, 해외에서는 정책·감독 분리는 실패한 사례로 남아 있다.

    영국은 1997년 금융감독청(FSA)과 재무부를 분리 운영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금융시장 붕괴를 경험했다. 이후 2013년 FSA를 해체하고 감독 기능을 재무부로 일부 회귀시켰다. 

    호주도 2014년 금융감독기관(APRA)과 재무부를 별도로 운영했지만, 2019년 양 기관 간 조정기구를 신설하며 절충 모델로 돌아섰다. 국제결제은행(BIS)도 2018년 보고서를 통해 금융 기능의 통합이 감독 효율성과 위기 대응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평가한 바 있다.

    ◆법 개정 없인 '그림의 떡'… 금융개편, '실용' 아닌 '혼선' 만들라

    다만, 이번 조직 개편은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 등 복수의 법률 개정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구조다. 정치권 내에서도 이번 조직 개편에 대해 찬반이 갈리고 있어 입법 자체가 난항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금융위 설치법 소관인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위 존치에 긍정적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발의한 법안 역시 기재부의 국제금융 기능을 금융위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정기획위원회의 개편안과 배치된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이번 금융개편안은 실무자 의견 수렴 없이 이뤄진 전형적인 탁상 개편이라는 지적이다. 금융위가 그간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안정적 정책 신뢰를 쌓아왔지만, 현장 경험도 없는 TF의 손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는 점에서다. 금감원 역시 권한없는 민원 조직으로 쪼개지게 되면서 소비자는 위기 대응 역량이 떨어지는 관료 체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한 교수는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기존 관료 시스템의 혁신을 강조한 것과 달리, 금융당국 조직 개편을 형식적 보고만으로 실행 모드에 들어갔다"며 "결국 금융시장 신뢰와 정책 일관성만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