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융 패키지 후폭풍, 3500억 달러 펀드+1500억 달러 직접투자韓 GDP 25% 맞먹는 대미 투자…국내 금융·가계 자금 고갈 우려정책금융기관 채권 발행, 시중은행 해외 차입 확대 불가피투자 명분에 짓눌린 한국 금융권 안정성 '시험대'
  •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 규모가 5000억 달러에 달한다. 경제안보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전망이다. 금융권이 막대한 부담을 떠안으면서 국내 자금 흐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5000억 달러 패키지 … 금융권 지원 확대 불가피

    정부는 7월 30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의 조건으로 3500억 달러 펀드를 제안했다. 이 가운데 1500억 달러는 조선 협력 펀드(마스가, MASGA 프로젝트)로서 한국이 비교적 주도권을 행사하는 구조다. 하지만 2000억 달러는 미국이 요구한 첨단 산업 펀드로 투자 방식·수익 배분이 불투명하다. 실제로는 수출입은행이 대출을, 무역보험공사가 보증을, 산업은행이 투자 일부를 맡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미국 측의 인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이 펀드는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한다. 이익의 90%는 미국인들에게 간다"고 공언했다. 한국 정부는 "실제 의미는 재투자 개념"이라고 해석하지만, 정치적 수사와 협정문 사이의 간극은 뚜렷하다. '투자냐 대출이냐'를 둘러싼 모호성은 향후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해석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민간의 1500억 달러 직접투자는 삼성·현대차·조선 3사·대형 배터리 업체 등이 주축이다. 업종은 반도체, 조선, AI·배터리 등 전략 산업이 대상이다. 이에 신한·우리·하나은행은 미국 내 지점·법인을 통해 대출, 보증, 외환 거래를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한국 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가 은행의 자금 흐름이자 새로운 수익원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계좌 개설, 송금, 대출, 환헤지 상품 등 기본적인 기업금융 수요는 확실하다는 점에서다. 다만, 이와 동시에 미국 금리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경기 둔화 시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는 뇌관도 떠안게 됐다.
  • ▲ 한화오션 필리조선소 전경. ⓒ한화오션
    ▲ 한화오션 필리조선소 전경. ⓒ한화오션
    ◆ 채권 발행·해외 조달 확대 불가피 … '외교 성과' 뒤 금융 불안

    한국은행 '2025년 1분기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외부감사대상 법인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89.9%로 비교적 안정적이고, 차입금 의존도는 25% 수준에 불과하다. 표면적으로는 추가 차입 여력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3500억 달러 펀드 조성 과정에서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은 대규모 보증·지원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여기에 1500억 달러가 더해지면 정책금융기관의 채권 발행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국내 채권시장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고, 시중은행의 해외 자금 조달 비용까지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들이 해외에서 대규모 달러를 조달한만큼, 국내 기업·가계 대출 여력은 축소된다고 지적한다. 이미 대출 규제와 금리 고착화로 자금 사정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서는 추가 자금 경색을 체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미 투자 명분을 앞세워 민간 금융의 유동성을 외부로 흡수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즉 5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는 외교적 성과로 포장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 금융시스템의 부담을 전제로 한 약속이라는 얘기다. 대규모 자금이 해외에 투입되는 만큼 국내 금융·산업 생태계가 체감할 압박도 불가피하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가 '생산적 금융·상생금융'을 내세워 스타트업과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확대를 은행권에 요구하고 있어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기업 투자 지원과 국내 중소기업 금융 확대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떠안으면서 금융권은 과중한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학계 한 교수는 "정부가 명분을 앞세운 투자를 무리하게 추진할수록, 금융 불안과 신용경색 리스크는 더 커진다"며 "실익 검증 없는 거대 약속은 결국 '돈 내는 동맹'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