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조선협력 주도권 경쟁… 한화·HD현대 전략 '극명'한화, 현지 조선소 인수… 투자금·그룹사 역량 총집결HD현대, '마스가 1호 MOU' 이어 조선계열 합병 카드글로벌 방산 수주전에선 '원팀'… 라이벌 관계로 '윈윈'
  • ▲ (왼쪽부터)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각사
    ▲ (왼쪽부터)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각사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주도권을 둘러싸고 한화그룹과 HD현대가 정면승부에 나섰다. 한화는 현지 조선소 인수로 생산 기반을 직접 확보한 반면, HD현대는 미국 방산업체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미국 조선업 재건’이란 같은 목표 아래 각기 다른 해법으로 경쟁 구도의 선봉에 선 모습이다. ‘마스가’ 성과가 이들의 경영능력 평가의 분수령이 된 가운데, 어느 쪽이 패권을 쥐느냐에 따라 그룹 위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화그룹과 HD현대의 ‘마스가’ 전략이 구체화하고 있다. 한화는 필리조선소에 대규모 투자와 그룹사 역량을 결집하며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고, HD현대는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 구축과 계열사 시너지 극대화를 통해 한미 협력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미국과의 공동 건조, 유지·보수·정비(MRO), 기술 지원, 인력 양성 등 전방위적 지원을 담은 이른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는 한미 관세협상 성과의 일등공신이다. 미국 조선업 재건의 핵심 파트너로서 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한화오션과 HD현대의 주도권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 중이다.

    ◆한화, 필리조선소에 7조 추가 투입… 계열사 지원도 잇따라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그룹이 미국 필라델피아에 보유한 한화필리조선소를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필리조선소 인수엔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이 투입됐고, 필리조선소 먹거리 마련엔 한화해운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룹의 투자력과 그룹사 역량이 총결집된 양상이다.

    한화필리조선소는 지난해 말 한화오션(40%)과 한화시스템(60%)이 약 1억 달러를 투자해 인수했다. 미국 상선 및 군함 건조 시장 진출을 위한 현지 거점을 확보하고, 글로벌 해양 산업을 선도할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전략적 사업 결단이었다.
  • ▲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시의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열린 선박 명명식에서 이재명 대통령, 조쉬 샤피로(Josh Shapiro) 펜실베니아 주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사를 하고 있다. ⓒ한화그룹
    ▲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시의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열린 선박 명명식에서 이재명 대통령, 조쉬 샤피로(Josh Shapiro) 펜실베니아 주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사를 하고 있다. ⓒ한화그룹
    26일(현지시간) 한화필리조선소에서는 미국 해사청(MARAD)이 발주한 ‘국가안보 다목적 선박’ 3호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State of Maine)’호에 대한 명명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 부부와 조현 외교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조쉬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지사, 김동관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한화그룹은 이날 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연간 1~1.5척 수준인 선박 건조능력을 20척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도크 2개 및 안벽 3개를 추가로 확보하, 약 12만평 규모의 블록 생산기지를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김동관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화는 미국 조선산업의 새로운 장을 함께 할 든든한 파트너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며 “미국 내 파트너들과 함께 새로운 투자와 기회를 창출하고 미국 조선산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화해운(한화쉬핑)은 필리조선소에 중형 유조선 10척·LNG 운반선 1척 등 총 11척의 선박을 발주, 조선소의 안정적 성장에 힘을 실었다. 중형 유조선 10척은 모두 필리조선소가 단독 건조하며 첫 선박은 2029년 초 인도될 예정이다. LNG운반선은 국내에 있는 한화오션과 함께 건조한다.

    한화해운의 한화필리조선소 대규모 발주는 미국산 에너지를 수출할 때 미국 선박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미국 통상법 301조 및 존스법 개정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한화해운은 신규 선박들을 활용해 미국과 동맹국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미국 해양 부문 재산업화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HD현대, 조선 계열사 사업재편… 미포에 방산DNA 심는다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한화그룹처럼 미국 조선소를 직접 인수하는 방법 대신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 체결, 기술 협력을 중심으로 미국과 협력하는 전략을 구사 중이다. 한화가 ‘생산기반 확보형’이라면, HD현대는 ‘기술·네트워크형 협력 모델’을 택한 셈이다.

    정 부회장은 미국 조선산업 재건을 위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이끈다. HD현대는 25일(현지시간) 미국 현지에서 미국 서버러스 캐피탈, 한국산업은행과 함께 ‘한미 조선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위한 MOU’를 맺었다.

    HD현대는 이 프로그램의 앵커 투자자이자 기술자문사로서 참여해 투자 프로그램의 운용을 뒷받침한다. 특히 투자 대상의 기술적 타당성과 경쟁력, 성장 가능성을 검토해 투자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공동 건조와 MRO 등은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빅3’가 고루 협력한다.

    HD현대는 앞서 올 4월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선박 생산성 향상과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고, 6월에는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와 ‘미국 상선 건조를 위한 전략적·포괄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정 부회장은 마스가 프로젝트 구체화와 함께 ‘마스가 1호 MOU’인 대규모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 조선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방산 기술·실적·생산 역량을 결집, 급증하는 해외 방산 진출 기회를 잡아 글로벌 리더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HD현대 조선부문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과 그 자회사인 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는 27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사 간 합병에 대한 안건을 의결했다. 양사는 향후 임시 주주총회 및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 올해 12월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 ▲ HD현대중공업(위), HD현대미포(아래) 야드 전경. ⓒHD현대
    ▲ HD현대중공업(위), HD현대미포(아래) 야드 전경. ⓒHD현대
    HD현대중공업은 국내 최다 함정 건조 및 수출 실적을 보유한 조선소다.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미 함정 MRO 사업 자격인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하기도 했다. 여기에 HD현대미포가 갖춘 중형선박 생산설비와 인력을 결합하면 보다 다양한 함정 신조·MRO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HD현대는 HD현대중공업과 조선 부문 해외사업을 담당하는 투자법인을 올 12월 싱가포르에 설립할 예정이다. 이 법인은 HD현대베트남조선과 HD현대중공업필리핀, HD현대비나(두산비나·가칭) 등 해외 생산 거점을 관리하면서 신규 야드 발굴과 사업 협력 등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허브 역할을 맡게 된다.

    K-조선 글로벌 위상 강화… 美 조선업 지분 인수는 '시험대'

    마스가 프로젝트 타결로 K-조선에 대한 러브콜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화그룹과 HD현대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영국의 군사 전문지 ‘제인스’(Janes)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예상되는 글로벌 함정 신규 계약 시장 규모는 총 2100여척으로, 그 금액만 약 3600억 달러(약 503조원)에 이른다.

    치열하지만 선한 경쟁 속에 K-조선의 글로벌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총 14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수주 사업에서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은 ‘원팀 컨소시엄’으로 참여, 최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과 함께 결선에 진출했다.

    이 사업은 캐나다 해군이 1998년 영국 해군으로부터 도입해 보유 중인 2400톤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기 위해 3000급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는 사업이다. 잠수함 획득 관련 계약 비용만 최대 20조원 규모로, 향후 30년간 운영·유지 비용까지 포함하면 계약 규모가 최대 60조원까지 늘어나는 초대형 잠수함 사업이다.

    우리 방산업체들은 방사청 중재 아래 잠수함 사업에선 한화오션이 사업을 주관하고, HD현대중공업이 지원하는 형태의 ‘원팀’으로 글로벌 수주전에 참여한다. HD현대중공업이 강점을 지닌 수상함 수주전에선 HD현대가 주관하고, 한화오션이 지원사격하는 형태로 글로벌 조선사와 경쟁하게 된다.

    한편 최근 미국이 반도체 다음으로 조선업 지분확보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조선업계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조선소에 대한 미국의 지분 투자가 확실시되는 경우 김동관 부회장과 정기선 부회장의 대처 능력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27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다음으로 기업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산업으로 조선업을 지목했다. 베선트 장관이 언급한 조선업에 대한 미 행정부의 지분확보 가능성이 마스가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는 만큼 업계 시선이 쏠렸다.

    베선트 장관은 이날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의 지분 확보도 고려하냐는 질문에 “엔비디아가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조선업 같은 산업은 논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인텔에 반도체법에 근거한 보조금을 비롯한 총 111억달러를 투자하고 그에 상응하는 인텔 지분 10%를 확보하기로 했다. 이후 다른 핵심 산업에 속한 미국 기업도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산업을 확정하지는 않은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