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 공장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 취소장비 반입 '포괄 허가'에서 '건별 허가'로 전환 … 경영 불확실성 극대화최대 100% 관세·보조금 연계 지분 요구 등 전방위 압박에 업계 '속앓이'
  • ▲ 트럼프 대통령ⓒAP 뉴시스
    ▲ 트럼프 대통령ⓒAP 뉴시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에 대한 장비 반입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관세 폭탄에 이어 또 다른 직격탄을 맞게 됐다. 예측 불가능한 통상 압박과 노골적인 자국 산업 우선주의가 결합된 '트럼프발 퍼펙트스톰'이 현실화하며 우리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31일 관련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29일(현지시간)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공장과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Verified End-User) 프로그램에서 제외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VEU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검증된 기업에 한해 건별 허가 없이 장비를 반입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포괄적 허가' 제도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3년 10월부터 이 자격을 유지해 온 우리 기업들은 그나마 안정적으로 중국 공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VEU 자격이 약 3년 만에 취소되면서 앞으로는 미국산 장비나 기술이 포함된 품목을 중국 공장에 들여올 때마다 미 상무부의 건별 심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는 장비 도입 지연과 추가적인 행정 비용은 물론, 허가 여부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극심한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이번 조치를 "바이든 시대의 구멍(loophole)을 막는 것"이라 규정하며, "어떤 외국 소유 반도체 공장도 미국 기업이 누리지 못하는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혀 동맹국에 대한 배려보다 자국 우선주의 원칙을 명확히 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인수한 인텔의 다롄 공장 역시 VEU 명단에서 제외돼, 사실상 이번 조치가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들을 정조준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VEU 자격 철회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격화된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옥죄는 여러 압박 카드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글로벌 25%의 상호관세와는 별개로 반도체에 대해 최대 100%의 품목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며 업계를 긴장시켜왔다.

    나아가 자국 기업인 인텔에 반도체법 보조금을 출자 전환 방식으로 지원해 최대주주로 올라선 뒤, 삼성전자와 TSMC를 직접 거론하며 보조금을 무기로 한 '인텔식 지분 거래' 가능성을 내비쳐 경영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칩 중국 수출을 막았다가 매출의 15%를 받는 조건으로 허용하는 등 일관성 없는 '거래' 스타일 역시 기업들의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지 불과 나흘 만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경제·통상 현안 이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압박성 메시지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물론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다. 이번 조치는 관보 게재 후 120일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되며, BIS는 "기존 공장 운영 유지를 위한 수출 허가 신청은 승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생산량 확대나 기술 업그레이드는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어, 현상 유지 이상의 발전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결국 우리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장비 수급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내 생산 거점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2~3주 간격으로 새로운 규제가 발표되고 변경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도 "미국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이라는 큰 방향성은 뚜렷한 만큼, 이에 맞춰 다각적인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