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기업 상무, 직속 부사장 상대 '직장 내 괴롭힘' 진정 상무 "부사장이 사실과 다르게 배임·횡령 혐의 씌웠다"'근로자' 판단 두고 피해 상무와 대기업 측 입장 엇갈려"임금 목적 종속적인 관계인가" … 대법원 판례가 중요 기준고용부 "근로자성 여부 직위 가지고 판단 안해 … 실질을 봐야"
  • ▲ 고용노동부. ⓒ뉴데일리DB
    ▲ 고용노동부. ⓒ뉴데일리DB
    "대기업 임원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 해당할까?"

    최근 한 대기업 임원이 직속 상사인 부사장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대기업 임원이 경영진의 직장 괴롭힘을 공론화 한 것은 업계에선 이례적이다.

    그러나 진정인이 법의 보호조치를 받기 위해선 우선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해당 임원은 4대 보험에 가입돼 있고 업무보고·출퇴근 등을 내세워 근로자라고 주장한다. 반면, 대기업 측은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도록 한 위임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고용부 경기고용노동지청은 한 대기업 수원본사에서 영상 및 디스플레이 업무를 맡고 있던 A상무가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 진정 사건을 조사 중이다.

    노동청에 제출된 진정서에는 B부사장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적시돼 있다. B부사장은 올해 초부터 A상무의 직속상사이자 부문 팀장을 맡아왔다. 

    A상무는 "B부사장이 부서 내 조직비 사용 현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실 검증 없이 A상무가 개인적으로 조직비를 유용한 것처럼 몰아가며 배임·횡령 혐의를 씌웠다"고 주장한다.

    A상무는 또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해도 무조건적인 인정과 사과, 반성을 강요했고, 또 다른 임원이 A상무의 자료 비공유 문제를 거론하자 소명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내 선에서 잘라버릴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이어갔다"며 "B부사장은 또 직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직장 괴롭힘 진정이 접수되면 관할 노동청은 통상 사실 조사에 착수하고, 진정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 사용자(회사)에게 시정지시 또는 행정지도를 내린다.

    그러나 이런 절차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A상무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먼저 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진정인이 근로자에 해당해야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대기업 측 상무 직급이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자유롭게 수행하도록 한 위임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을 근거로 '일반적으로 근로자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노동청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A상무 측은 비등기 임원 신분으로 4대 보험에 가입돼 있고, 주간 회의와 비정기 일정을 통해 상세 업무를 보고하며 출퇴근 기록도 제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청은 A상무가 '근로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실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근로자' 여부를 판단할 때는 1994년 선고된 대법원 판례를 중요 기준으로 삼는다.

    관련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그 계약의 형식이 민법상의 고용계약인지 또는 도급계약인지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또 구체적으로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는 ▲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는지 ▲업무수행과정에 있어서도 사용자,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 ▲사용자에 의해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는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져 있는지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돼 있다.

    노동청은 해당 대기업에 추가 자료를 요청해 A상무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자에게 제공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 볼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자성 여부는 기본적으로 직위만 가지고는 판단을 하지 않고 실질을 보게 된다"면서 "결국 현장에 나가서 조사를 다 해 봐야 근로자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