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용자 금리 올려라"…은행 시스템 뒤흔드는 발상 논란권대영 "금리 직접 조정보다 공동기금 조성이 현실적"“0.1% 올리면 체계 전체 흔들” 금융시장 불안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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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저신용자의 연 15%대 고금리를 완화하라며 고신용자 금리를 소폭 인상하는 방안을 주문했지만, 금융권 안팎에서 반발이 거세다. 특히 이 대통령의 ‘특급 칭찬’을 받아온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마저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이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고신용자는 싸게 돈을 빌려 부동산 투기까지 하지만, 가장 어려운 사람은 15% 넘는 금리를 감당한다”며 “금융회사의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어 “금융은 개인이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해 만든 게 아니라 국가 시스템에 기반한 독점 사업”이라며 “사회주의자 얘기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금융은 좀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권 부위원장은 “금융회사의 이익이 많으니 일정 부분을 출연해 공동기금을 만들면 된다”며 “재정과 민간 금융이 함께 출연하는 특별 기금을 조성해 금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대통령 지시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대출 금리를 직접적으로 인위 조정하는 대신 기금을 통한 보완책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해석된다. 사실상 대통령의 ‘고신용자 금리 인상’ 구상에 우회적 반대 신호를 보낸 셈이다.

    금융권에서도 대통령의 구상이 금융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출 금리는 차주의 신용위험에 따라 산출되는 구조인데, 고신용자의 금리를 인위적으로 높이고 저신용자의 금리를 낮추는 방식은 위험 관리 체계를 무너뜨린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0.1%포인트만 올려도 신용등급별 금리 체계를 모두 다시 짜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지원 문제가 아니라 은행 시스템 전체를 재편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부에서는 ‘역차별’ 논란과 ‘도덕적 해이’ 우려도 제기된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고신용자에게는 불이익이 되고, 저신용자에게는 ‘정부가 대신 부담해줄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어서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민간 금융사의 이익을 강제로 출연시키거나 교차 보조를 강제하면, 결국 금융사의 리스크 회피로 대출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약자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금융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포퓰리즘”이라며 “2003년 카드대란이 바로 시장 원리를 거스른 결과였다”고 경고했다.

    금융권에서는 ‘포용금융’이라는 대통령의 철학과 ‘금융원칙’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정면 충돌한 사례라는 해석이다. 대통령의 구상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더라도, 실제 제도화 과정에서 금융시장 왜곡과 건전성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 권대영 부위원장의 발언은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한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학계 교수는 “취약계층 지원은 필요하지만 금리를 직접 건드리는 방식은 금융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며 “재정 지원, 보증 확대 등 제도적 보완책으로 접근해야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