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전략광물 자급 능력 갖춘 유일 기업중국 수출통제, 미국 보호 강화… 한국만 뒷짐공급망 전쟁 속 국가 전략기업 혼란 방치 지적"기업 분쟁 장기화, 곧 국가 경쟁력 약화" 우려
  • ▲ 2025년 고려아연 정기주총 모습. ⓒ뉴데일리
    ▲ 2025년 고려아연 정기주총 모습. ⓒ뉴데일리
    지난해 9월 본격화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지난 1년간 수많은 소송과 의혹을 주고받으며 소모전을 지속했고, 이 사이 고려아연의 재무구조는 급속도로 악화했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은 경영권을 일단 지켰지만, MBK파트너스가 장기전을 각오한 만큼 후폭풍도 계속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혼란이 단순히 한 기업 차원의 갈등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려아연은 아연 제련 세계 1위 기업이자, 구리·리튬·니켈 등 전략광물 분야에서도 국내 유일한 공급망 기반을 갖춘 곳이어서다. 국가기간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고려아연 사업에 차질이 생길 시 우리나라 전체가 위협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고려아연은 매년 아연을 비롯해 연(납), 은, 동(구리) 등 비철금속 약 10종류를 세계 최대 규모로 생산한다. 대부분 전자·자동차·철강 등 주요 산업의 기초소재로 쓰인다. 특히 안티모니(안티몬),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전략광물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해 공급한다. 이들 전략광물은 방산 필수소재며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폭넓게 활용된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전략광물 확보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중국은 지난해 9월 안티모니에 이어 올 2월 텅스텐, 몰리브덴,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5개 전략광물 품목에 대해 수출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첨단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에 대항하면서, 중국 경제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이다.

    중국의 핵심광물 통제가 심화하며 세계 공급망에서의 고려아연 역할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은 2020~2023년 비스무트를 중국(67%)에 이어 한국(23%)에서 많이 수입했다. 고려아연은 연 150톤 가량의 인듐을 세계 시장에 공급 중으로, 미국으로도 상당량을 수출하고 있다. 안티모니의 경우 매년 생산량의 30%를 유럽과 일본에 수출 중이다.

    고려아연이 탈중국 공급망 형성을 위한 핵심에 자리한 것으로, 미국의 고려아연 사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주요 안보 이슈로 보고 있다. 중국의 고려아연 인수 시 미국의 공급망 또한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고려아연 사태가 단순한 기업 경영권 분쟁을 넘어 지정학적, 경제적 패권 경쟁의 맥락에서 다뤄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잭 넌 연방 하원의원 등 미국 정치권 인사들이 잇따라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우려를 나타낸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를 ‘민간 문제’로만 치부하며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광물 공급망을 둘러싼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면에서 정부가 산업 전략 차원에서의 시각을 갖추지 못한다면, 기업 분쟁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려아연은 올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법원의 판단으로 영풍의 고려아연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된 가운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의결권 지분율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이사회 과반을 확보했고, 주요 안건의 표 대결에서 승리했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고려아연 측 인사 11인, MBK 측 인사 4인으로 확정됐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그러나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MBK 연합은 주총 결과에 불복하는 법적 대응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최 회장의 투자 활동에 의혹을 제기하며 고소 고발을 진행 중이며, 고려아연은 MBK와 영풍이 1년 내내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소모적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중 간 전략광물 패권 경쟁이 격화한 가운데서 정부가 고려아연을 완충 역할로 활용해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적기로, 경영권 분쟁을 넘어 경제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지난달 고려아연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 1위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를 위해 고려아연은 울산 온산제련소에 약 1400억원을 투자해 고순도 게르마늄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경영권 분쟁의 위기를 딛고 탈중국 글로벌 공급망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