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때리기 연일 격화… 제재·응수 악순환VEU 자격 박탈 후 번복… 품목 관세 폭탄 예고"반도체 패권 경쟁 속 최대 피해국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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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규제 수위를 연이어 높이면서 국내 반도체업계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양국이 자국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명분으로 상대국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국내기업들의 영향이 불가피하기 하기 때문이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본격화될수록 한국 반도체 기업의 전략적 선택지는 더욱 좁아지는 형국이다.18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인터넷 정보 판공실(CAC)은 이번주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등 자국 빅테크 기업에 미국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RTX 6000D’ 시험 및 주문을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RTX 6000D는 엔비디아가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중국용 인공지능(AI) 칩인 ‘H20’ 수출을 제한한 후 중국 시장을 위해 개발한 새로운 AI 전용 칩이다.이번 조치는 앞서 중국의 H20 구매 중단 조치보다 더 광범위한 것으로 중국이 미국 반도체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국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AI 반도체 선점 전략에 대응해 중국도 ‘탈(脫) 엔비디아’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다.같은 날 미국이 블랙리스트에 올린 중국 화웨이의 자회사 ‘퓨처웨이 테크놀러지’가 엔비디아 본사에 10년 넘게 입주해 온 것을 두고 미 의회가 조사에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미 의회는 퓨처웨이가 산업 스파이 활동을 벌여왔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미중 4차 고위급 무역협상 전후로 양국의 반도체 때리기가 격화하는 분위기다. 희토류 수출 통제나 반도체 등이 핵심 무역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상대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앞서 13일(현지시간) 중국 상무부는 미국산 아날로그 반도체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동시에 미국이 자국산 집적회로(IC) 제품, 즉 반도체에 취한 조치에 ‘차별적 요소’가 없었는지도 함께 조사한다. 특히 미국이 화웨이 ‘어센드’ 칩 사용을 제한하고 미국 AI칩을 중국 AI모델 훈련에 사용하는 것을 제한한 조치 등 중국산 AI 반도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정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이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에 대한 응수로 보인다. 12일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 23곳을 수출 규제 명단에 추가했다. 23곳 중에는 지무시(GMC) 반도체와 지춘 반도체가 포함됐는데 이들은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SMIC가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제재 명단에 올랐다.양국의 공방은 곧장 한국 기업들의 경영 환경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말 미국 상무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생산 법인에 부여했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을 박탈했다. 이 조치로 두 회사의 중국 공장은 더 이상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예외적으로 쉽게 들여올 수 없게 됐다. 다시 말해, 장비 반입 때마다 별도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불편과 지연 위험이 생긴 것이다.그런데 이달 초 미국이 다시 입장을 바꿔, 장비 수출 물량을 연간 단위로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불과 보름 사이에 규제 방침이 바뀐 셈이다. 이런 정책 혼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내 사업 전략을 장기적으로 세우는 데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언제 규제가 다시 강화될지 알 수 없어 투자와 생산계획을 안정적으로 짜기 어렵기 때문이다.게다가 현재 미국은 반도체 품목관세와 중국 관세 등 관련해 막판 고심 중이다. 특히 당초 지난달 발표가 예고됐던 반도체 품목관세의 경우 ‘100%’라는 가이드라인 정도만 나왔을 뿐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보다 수익성이 좋은 반도체와 의약품에는 자동차(25%)보다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중국을 타깃으로 규제 수위를 높이는 것이지만 국내 반도체 기업들 또한 직간접적 영향이 불가피하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2위로서 미국과 중국 양쪽에 모두 깊숙이 관련돼있다.업계 관계자는 “거의 매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규제가 새로 나오고 바뀌는 상황이라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 “국내 기업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단기 대응에는 나서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우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