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셧다운 우려에 달러 1430원 돌파CET1 하락, 금융지주 자본비율 '경고등'외화조달금리 6% 육박, 이중 압박 본격화금융당국, 실개입 가능성 시사에도 시장 불안 여전“외환위기보다 복합적 위기” … 금융 시스템 리스크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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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 돌파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금융권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금융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일시적 진화책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환율 급등이 외화조달금리와 자본비율(CET1)을 동시에 압박하면서 금융지주의 자본건전성도 경고등이 켜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30원대를 돌파하며 1년 반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미·중 무역갈등이 재점화되고,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및 통화스와프 난항까지 겹치며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고 있다. 환율 1440원이 심리적 마지노선이지만,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1500원 돌파도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CET1 비율은 KB금융 13.74%, 신한 13.59%, 하나 13.39%, 우리금융 12.76% 수준이다. 금융지주는 주주환원 활용을 위해 CET1 13% 이상을 목표로 관리 중이다. 통상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금융지주의 CET1은 평균 0.01~0.03%포인트(p) 하락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외화자산·부채 규모가 클수록 변동 폭도 함께 커진다.

    즉 환율이 100원 오를 경우 CET1은 최대 0.3%p까지 하락할 수 있으며, 환율이 1500원대까지 오르면 지주사별로 0.3~0.5%p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비상계엄, 탄핵 정국 등으로 환율이 1400원대 후반까지 치솟자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CET1 평균은 전년 대비 0.13%p 줄었다.

    강달러 기조가 지속될 경우 금융지주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일각에서 제기하는 환율 1600원선이 뚫릴 경우 금융지주는 CET1 12% 붕괴선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CET1 12%는 국제결제은행(BIS) 규제상 '경고 구간'으로, 이 선이 무너지면 신용등급 하락과 외화조달금리 상승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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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은행들의 외화조달금리도 이미 5.7~6.0%대로 고착됐다. 9월 FOMC에서 연준이 25bp(1bp=0.01%p)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달러 스프레드(credit spread)와 환헤지 비용이 확대되며 체감 조달비용은 낮아지지 않았다. 5년물 달러채 기준 조달금리(SOFR+스프레드)는 연 6% 안팎, 신용스프레드는 120bp를 웃도는 수준으로, 2년 만에 최대폭으로 벌어졌다.

    국제금융센터(KCIF)에 따르면 9~10월 만기가 도래하는 한국계 외화채권 규모가 400억달러 이상으로, 차환(roll-over) 수요가 집중되며 조달 비용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NH금융리서치센터 보고서 역시 환율이 1500원대에서 장기 고착될 경우 은행권 순이익이 10~15%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외환당국도 환율 급등세가 진정되지 않자 이례적으로 강한 경고성 발언을 이어갔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공동 입장을 통해 "시장 쏠림 가능성에 대해 경계감을 가지고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명백한 '구두개입(oral intervention)' 성격의 메시지로, 시장에서는 향후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 개입)' 가능성도 제기된다. 2022년 환율이 1440원을 돌파했을 때도 실제 매도 개입이 병행된 바 있다.

    당국은 외환보유액이 9월 말 기준 4220억 달러로 넉 달째 증가세를 보이며 외환방어 여력은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환율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은행권 수익성뿐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체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외환시장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제2의 IMF급 신용 경색'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환율 급등은 단기적 위험회피 심리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지만, 미·중 갈등과 글로벌 금리 차가 장기화되면 외환시장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