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법 바꿔서라도 한은 주도해야" vs 이억원 "연내 입법 추진"이찬진 "레거시 금융에 기회 줘야" … 방향 제각각컨트롤타워 없는 정책 혼선 … "속도보다 방향"
  • ▲ ⓒ게티이미지뱅크
    ▲ ⓒ게티이미지뱅크
    금융당국 수장들이 국정감사에서 가상자산 제도화 관련해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며 컨트롤타워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스테이블코인, 디지털자산법, 레거시 금융 참여 등 핵심 사안에 대한 세 기관의 시각차가 커지면서 정책 일관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을 바꿔서라도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 의사결정 주체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화정책의 영역이라는 논리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허용되면 자본자유화, 외환규제 등 거시경제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예컨대 가상자산 혁신보다 통화안정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같은 날 열린 정무위원회 국감에선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다른 결을 보였다. 이 위원장은 "연내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를 담은 2단계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며 "시행령 작업까지 병행해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발행인 인가제, 자본금 요건, 상환권 보장 등 제도 틀을 빠르게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또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이 원장은 "가상자산시장의 독과점 폐해를 막으려면 레거시 금융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며 "은행, 증권, 보험이 거래소 시장에 일정 부분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보다 감시 강화와 기존 금융의 참여 확대에 방점을 찍은 발언이다.

    결국 가상자산 제도화의 큰 틀을 두고 금융당국 수장 셋이 각자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국회 안팎에서는 '통화정책, 금융정책, 감독정책이 따로 노는 전형적인 엇박자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의 문제", 금융위는 "산업 제도 설계의 문제", 금감원은 "감독의 문제"로 각각 접근하면서 일관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태다.

    가상자산 업계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국감 발언만 놓고 보면 당국 간 조율이 전혀 안 되고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은은 속도를 늦추라 하고, 금융위는 법을 서두르라 하고, 금감원은 기존 금융을 끌어들이자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도 가상자산 정책이 규제와 혁신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당국간 제도 설계의 주도권 다툼이 아닌, 법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STO, 디지털원화 등 핵심 의제가 모두 엇갈린 채 추진되면 결국 규제의 사각과 책임의 공백이 동시에 생길 수 있다"며 "가상자산 제도화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