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인=1원은 착시' … 한은, 민간발행 스테이블코인에 경고장디페깅·코인런·금산분리 훼손 … 스테이블코인, 통화체계 위협 우려7대 위험요인 공개 … "은행·예금토큰 병행해야 안정"
  • ▲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 ⓒ한은
    ▲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 ⓒ한은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성을 정면으로 짚으며 "은행 중심의 발행만이 금융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블록체인 기반 혁신의 잠재력은 인정하면서도 민간기업이 통화기능을 대체하는 것은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는 것.

    한은은 27일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 방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총 141쪽에 달하는 이번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의 정의부터 글로벌 사례, 제도적 허점, 정책 대안을 종합적으로 담은 사실상 스테이블코인 백서다. 보고서에서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열쇠일 수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불안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우선 스테이블코인의 '7대 위험요인'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한은은 첫 번째로 가치 연동이 깨지는 '디페깅(De-pegging)' 현상을 짚었다. 스테이블코인은 1코인=1달러 또는 1원과 같은 가치 고정을 약속하지만, 이는 실제로 자주 깨진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C는 일시적으로 0.88달러까지 떨어졌다.

    둘째는 '코인런(Coin Run)' 위험이다. 불안 심리로 상환 요구가 몰리면 뱅크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금이 빠져나간다. 실제로 SVB 사태 때 USDC 발행사 써클은 단 이틀 만에 시가총액의 18%에 해당하는 78억달러 상환 요청을 받았다.

    한은은 셋째로 예금과 달리 보호장치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은은 "1코인=1원은 발행자와 이용자 간 사적 계약일 뿐, 국가가 이를 보증하지 않는다"며 "발행사가 상환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예금자보호법 적용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넷째는 IT기업 등이 코인을 발행할 경우 '금산분리 원칙’이 훼손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한국 금융제도의 근간이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을 민간이 발행하면 사실상 내로우뱅킹(대출을 제외한 은행업무)을 허용하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한은은 다섯째로 외환규제 우회 가능성을 점쳤다. 국내 투자자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개인 지갑으로 전송한 뒤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꿔 해외로 송금하는 경우 사실상 외환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 실제로 가상자산을 이용한 외환 불법거래 비중은 2020년 3%에서 지난해 52%로 급증했다.

    여섯째는 통화정책의 무력화 우려다.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등으로 유동성을 조절하더라도,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이 계속 풀리면 정책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100조원 발행되면 실제 통화량은 약 93조3000억원 늘어난다.

    마지막으로 한은은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위축될 가능성도 거론됐다. 스테이블코인이 예금을 대체하면 은행의 대출 여력이 줄고, 이는 중소기업과 서민 금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이런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은행이 주도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체계를 제시했다.

    한은은 "은행이 발행 주체가 되거나,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이 스테이블코인을 관리해야 한다"며 "IT기업 등 비은행 부문은 참여하되, 발행 주도권은 금융 규제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한은은 자사가 추진 중인 예금토큰 실험과의 병행 운영도 제안했다. 예금토큰은 실제 은행 예금을 토큰화한 디지털 자산으로, 한은의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발행된다.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국가의 규제 틀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이 다르다.

    한은은 "은행이 주도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고 예금토큰과 상호 보완적으로 설계된다면, 민간의 혁신과 공공의 신뢰가 조화를 이루는 이중 구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은은 "혁신이 아무리 중요해도 신뢰를 잃은 화폐는 지속될 수 없다"며 "조선 후기 당백전이나 미국 자유은행 시대처럼, 제도적 안전망 없는 화폐는 언제나 같은 결말을 맞았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