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과 중국발 저가 공세, 미국발 관세 압박 겹쳐철강 등 제조 중소기업, '반도체 착시' 속 자금난·경영난 심화금융권, 부실 대출로 건전성 지표 악화
  • ▲ 기사와 관련 없음. ⓒ뉴데일리DB
    ▲ 기사와 관련 없음. ⓒ뉴데일리DB
    반도체 경기 반등으로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철강 등 제조 관련 중소기업들은 내수 부진과 중국발 저가 공세, 미국발 관세 압박 속에 자금난과 부실의 수렁에 빠지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표면적으로는 한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는 듯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이는 '착시'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에 중국발 공급 과잉과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서 제조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악화하고 있다. 중소기업 은행 연체율도 금융위기 수준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높은 IBK기업은행의 올해 3분기(7∼9월) 대출 연체율은 1%로,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9년 1분기(1.02%) 이후 최고치로 집계됐다. 

    3분기 기업 대출을 보면 연체율이 1.03%로, 2010년 3분기(1.08%)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았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전체 여신의 82.9%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중기 대출 연체율도 올해 3분기 평균 0.53%로, 같은 분기 기준으로 2016년 3분기(0.65%)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5대 지방은행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지역 경기 부진이 이어진데다, 환율 급등으로 외화 대출을 한 기업들의 부담도 가중되면서다. 이들의 평균 3분기 연체율은 1.1%로, 같은 분기 기준으로 2016년 3분기(1.14%)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다. 전북은행의 3분기 중소기업 연체율은 1.27%로 지방은행 중 가장 높았다. 전년 동기(0.62%)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특히, 미국이 5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한 철강 및 알루미늄 파생상품은 산업용 부품 등 중소기업 생산 제품이 많아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다. 중견 및 대기업이 해외로 설비투자를 늘릴 경우,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납품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속되는 중국산 저가 공세도 중소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 ▲ ⓒ뉴데일리DB
    ▲ ⓒ뉴데일리DB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는 이자·수수료로 올해 3분기까지 15조원이 넘는 최대 이익을 거뒀지만, 동시에 부실 대출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대 금융지주가 1분기 실적과 함께 공개한 팩트북 등에 따르면, 3분기 말(9월 말) 기준 이들의 요주의여신(연체 1∼3개월) 합은 18조3490억원으로 집계됐다. 우리금융지주 출범으로 4대 금융지주 합산 통계가 시작된 2019년 1분기 이후 최대 규모다.

    요주의 단계보다 부실이 더 심한 고정이하여신(NPL·연체 3개월 이상)도 9조2682억원으로 집계됐다. 4대 금융지주 출범 이래 가장 많았던 2분기(9조3042억원)보다는 360억 가량 줄었지만, 1년 전인 작년 3분기 말(7조8651억원)보다 18% 늘었다.

    반대로 부실 감당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4대 금융지주의 단순평균 NPL커버리지비율(대손충당금 잔액/고정이하여신)은 123.1%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3분기 말(141.6%)과 비교해 1년 사이 18.5%포인트(p) 급락했다.

    각 금융지주가 막대한 충당금을 쌓고 활발한 상·매각으로 부실 채권을 털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금융지주의 건전성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를 사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4대 금융지주는 총 5조6296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했는데, 2019년 이후 3분기 누적 기준으로 가장 많다.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올해 1∼3분기에 걸쳐 모두 4조6461억원어치 부실 채권을 상·매각했는데, 이는 이들 은행 상·매각 합산 통계가 가능한 2018년 이래 3분기 누적 기준 최대 기록이다.

    은행은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 채권을 '고정 이하' 등급의 부실 채권으로 분류하고 별도 관리하다가,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면 떼인 자산으로 간주한다. 이후 아예 장부에서 지워버리거나(상각),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방식으로 처리한다.

    수년간 이어진 한국 경제의 저조한 성장과 높은 금리 등이 금융권의 부실 확대를 부추긴 것으로 지적된다.

    한국은행이 9월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외부감사 기업 중에서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밑돈 한계기업 비중은 17.1%로, 2010년 이후 최고치였다.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돌았다는 것은 한 해 벌어들인 돈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중에서도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지난해 18.0%로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이처럼 중소기업계가 자금난에 시달리자 최근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며 정책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당분간 경제 성장률이 잠재 수준(약 2%)을 하회할 가능성이 큰 만큼 자금난과 부실 위험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 13조6081억원 증가한 675조8371억 원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