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고환율 장기전에 비상대응 … PF·건설 집중관리중소·중견 제조업, 현금흐름 흔들리며 부실전조 확산보험·캐피탈까지 진동 … 자본 압박과 연체 확대 경고고환율 3개월 지속 시 금융시스템 충격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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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470원 선을 넘보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조용하지만 깊은 금'이 퍼지고 있다. 제조업의 원가 부담은 치솟고, 금융권은 기업여신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며 리스크 점검 빈도를 높이고 있다. 외환시장 변동성이 실물·금융을 동시에 흔드는 전형적 '퍼펙트 스톰'의 그림자다. 정부는 단기 유동성 공급과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섰지만, 글로벌 투자자 신뢰 회복과 기업들의 환위험 관리 없이는 충격이 장기화될 수 있다. 본지는 3부작 기획을 통해 한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새로운 안전판을 세워야 하는지 면밀히 짚어본다. <편집자 주>"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는 순간, 방어 전략이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바뀐다."한 시중은행 리스크본부 임원의 말이다. 원·달러 환율이 1460원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으면서, 금융권 여신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시중은행들은 10월부터 리스크 점검 회의 빈도를 평소의 두 배 이상으로 늘리고, 계열사별 취약 업종 리스트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PF·건설 중심으로 '붉은 신호' … 은행, 취약 차주 실시간 추적우선 먼저 충격을 받는 부문은 건설·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이미 금리 고정으로 인한 조달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원자재가 달러로 조달되면서 원가 상승 압력이 이중으로 작용하고 있다. 분양 일정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자금 흐름이 즉시 끊기는 구조다.지방 중견 건설사를 중심으로 현금 유입과 유출 시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일부 은행은 위험도가 높은 PF 프로젝트에 대해 자금 소요와 회수 계획을 다시 작성하도록 요구했고, 신규 PF 취급은 사실상 중단 수준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PF 연체율도 비공식적으로 상승 추세가 감지된다. 대표적으로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2금융권의 부동산·건설업 익스포저가 급격히 비대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비은행 건설업 연체율은 10.26%, 부동산업 연체율은 7.91%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제조업과 수출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 환율 10원 변동만으로도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0.5~1.5%씩 출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가 부담이 커져도 납품단가나 수출가격에 100% 전가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규모 연체가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아니지만, 내부 모델상 위험도가 한 단계씩 올라가고 있다"며 "조용히 부실의 전초전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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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장비금융·보험까지 … 2차 충격권 진입제조업 2~3차 협력업체들은 환헤지 수단 자체가 제한적이다. 만기 6개월~1년의 무역차입금 상환 시기가 다가오면, 환차손을 포함한 상환 부담이 부도로 직결될 위험이 높다.장비금융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피탈사는 경기 둔화와 함께 연체율 선행지표가 가장 먼저 악화되는 업권으로 꼽힌다. 일부사는 이미 운전자금 비중을 줄이고 담보 중심으로 대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보험사들도 외화자산 평가손이 확대될 경우 지급여력(RBC)비율 방어에 비상이 걸린다. 특히 생보사의 경우 해외채권 비중이 80~90% 수준이어서 환율이 일정 구간을 넘어서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평가손이 즉시 커진다. 손보사도 해외 재보험 계약 지급보험금이 달러로 산정돼 변동성을 피할 수 없다.증권사 역시 PF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할인 매각이 늘고 있고, 환율 급등에 따른 옵션 파생상품 마진콜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당국, 구두개입으로 '15원 쇼크' 진정시켰지만 … "3개월이 분수령"정부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앞서 원·달러 환율이 1474.90원까지 치솟자,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가용 수단을 적극 활용해 환율 안정에 대처하겠다"며 시장안정 메시지를 직접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 한마디에 환율은 1459원대까지 15원 넘게 급락했다.구두개입에도 꿈쩍 않던 환율이 즉각 반응한 배경에는 해외투자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달러 실수요 감소 기대감이 있었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카드도 환율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은행과의 외환스와프를 활용하면 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다만, 노후자산을 책임지는 연금 자금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 딜레마도 뒤따른다. 기업과 개인의 해외 투자 수요가 지속되면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전문가들은 고환율 지속 기간이 금융위기의 트리거가 될 것으로 본다. 1개월 유지될 경우 취약 업종 중심으로 자금경색이 발생하고, 3개월 이상 지속시에는 연체율 상승, 대손충당금 확대, 자본비율 압박이 본격화된다는 분석이다. 6개월 이상으로 넘어갈 경우 업종별 구조조정 도미노가 현실화되면서 금융시스템 전반의 충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진경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한국 대비 산업 주도력을 갖춘 미국으로 자금 이탈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에 따른 구조적 원화 약세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 기조가 이어지고 있고, 최근 Fed의 금리 인하 기조가 약화되자 달러 강세가 나타났던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구두 개입 효과가 지속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