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한화·사모펀드 3파전… 1조원대 빅딜로 부동산 자산 많은 태광… 부동산·금융 밸류체인 석유화학 실적 부진 속 레버리지·EB 변수도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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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광그룹
    태광그룹이 국내 1위 부동산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뛰어들며 체질 개선 승부수를 던졌다. 석유화학 위주 사업 구조를 ‘보험·자산운용·리츠·대체투자’로 넓히는 포트폴리오 전환의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매각 본입찰에는 한화생명·흥국생명과 글로벌 사모펀드(힐하우스)가 참여해 사실상 3파전 구도가 형성됐다. 매각 대상은 창업자 유가족과 재무적 투자자 지분을 합친 약 98%로, 지난해 말 기준 운용자산은 약 66조8000억원 수준이다.


    ◆ 1조원대로 몸값 불어난 이지스자산운용

    본입찰에서 한화생명과 힐하우스는 지분 100% 기준 약 1조원 안팎을, 흥국생명은 이보다 높은 1조원대 초반 수준의 인수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초 6000억원대에서 거론되던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가는 인수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조원대로 뛰어올랐다는 게 투자은행(IB) 업계의 전언이다.

    태광그룹 자회사인 흥국생명이 이처럼 큰 금액을 베팅한 배경에는 단순한 금융·자산운용 결합을 넘어, 부동산 자산이 많은 태광그룹과 자산운용사 간 시너지를 노린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태광그룹은 서울 남대문 흥국생명 본사 일대에 5개 건물을 보유하고 있고, 여기에 최근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 인수까지 더해지면서 남대문 일대에만 6개 건물을 묶는 이른바 ‘태광타운’을 구축했다.

    태광그룹은 이미 그룹 핵심 자산을 부동산·리츠 플랫폼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흥국생명빌딩을 편입한 흥국코어리츠를 설립해 사옥을 리츠에 매각하고 장기 임차인으로 남는 세일앤리스백(sale and leaseback) 구조를 택한 것이 대표적이다. 태광산업이 흥국코어리츠 에쿼티에 참여하고, 별도의 리츠 운용사인 흥국리츠운용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이지스자산운용까지 품게 되면 흥국생명·흥국자산운용·흥국리츠운용과 이지스를 한 축으로 엮어 ‘보험–전통 자산운용–리츠–부동산 전문 운용사’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갖추게 된다. 보험료로 들어온 자금을 그룹 내부 운용 생태계에서 순환시키면서 외부 위탁 수수료를 줄이고, 연기금·공제회 등 외부 기관투자가를 고객으로 끌어들여 수수료 기반 수익을 키우겠다는 계산이다.

    내년 본격 시행되는 새 지급여력제도(K-ICS)도 태광의 선택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K-ICS에서는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 대한 위험계수가 기존 RBC 체계보다 크게 높아져, 사옥·수익형 부동산을 많이 들고 있을수록 요구자본이 늘어나는 구조다. 보험사들이 직접 보유하던 빌딩을 리츠로 이전하고, 대신 부동산·대체투자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를 늘리는 흐름이 빨라지는 배경이다. 흥국생명이 사옥을 리츠에 넘기고, 동시에 국내 1위 부동산 운용사 인수전에 뛰어든 데는 이런 규제 환경 변화도 깔려 있다는 평가다.
  • ▲ 서울 남대문에 위치한 흥국생명 빌딩. ⓒ뉴데일리
    ▲ 서울 남대문에 위치한 흥국생명 빌딩. ⓒ뉴데일리
    ◆ 3분기 또 영업손실… 새 수익 축 키운다  

    태광은 올 들어 국내 M&A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태광산업 컨소시엄은 10월 애경산업 지분 63.13%를 약 47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고, 이달에는 KT&G로부터 약 2000억원 규모의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을 인수하는 매매계약을 맺으며 부동산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태광그룹 전체로 보면, 이번 인수전은 섬유·석유화학에 치우친 사업 구조를 금융·부동산 운용 수수료로 분산시키는 작업의 연장선이다. 애경산업 인수, 남대문 메리어트 호텔 매입에 이어 이지스자산운용까지 품게 되면 소비재·호텔·부동산·운용사를 한 데 묶는 '부동산·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구상도 가능해진다.

    다만 재무 여력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광그룹은 사업 재편을 위해 1조5000억원 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은 가운데 애경산업과 남대문 메리어트 호텔 인수에 이미 상당 부분을 집행했다. 여기에 이지스자산운용과 케이조선까지 동시에 노리면서 레버리지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으로 자금을 충당하려던 계획이 정부·여당의 상법 개정 추진과 감독당국의 잇단 경고로 사실상 제동이 걸린 점도 태광의 재무 전략에 부담 요인이다.

    그럼에도 태광 측은 신사업 추진 의지가 강한 모습이다. 올 3분기 영업손실이 418억원에 달하는 등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사업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에서다. 기존 그룹 근간이었던 석유·화학 업황의 회복을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소비재·호텔·부동산 운용 등 새로운 수익 축을 서둘러 키워 사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이지스자산운용은 올해 태광이 추진한 M&A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이라며 "애경산업과 남대문 메리어트가 새로운 도전이었다면 이지스는 태광이 잘할 수 있는 부동산·금융 역량을 극대화하는 승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