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 외면 … 자산운용사 중심 3분기 연속 외화자산 ‘급팽창’서학개미만 탓하는 당국 … 기관들도 환율 불안의 또 다른 축정책 불확실성 커질수록 원화 신뢰 추가 훼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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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들까지 자산을 해외로 대거 이동시키고 있다. 고환율·저성장 국면 속에서 국내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자 수익처를 글로벌 자본시장으로 돌리며 '탈(脫)한국 자금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정책당국이 환율 불안의 원인을 개인투자자에게 돌리고 있지만, 정작 국내 자산의 체질 저하를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건 기관들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은행이 1일 발표한 '주요 기관투자가 외화증권 투자 동향'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외화증권 투자 잔액은 4902억 1000만달러로 전분기 대비 246억 7000만달러(5.3%) 증가했다. 작년 4분기 감소세를 보인 뒤 올 들어서는 3분기 연속 확대다. 올 3분기 증가 규모는 역대 상위 수준이다.

    특히 자산운용사의 행보가 눈에 띈다. 3개월 동안 178억 5000만달러가 늘며 전체 증가분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보험사(33억 6000만달러), 증권사(20억 1000만달러), 외국환은행(14억 6000만달러) 역시 동반 증가했다. 기관 간 자금 운용 기조가 명확하게 해외 쏠림으로 전환된 모습이다.

    상품 구성별로도 외국주식이 191억 3000만달러 확대되며 증가분 대부분을 이끌었다. 이어 외국채권(46억 6000만달러), 코리안페이퍼(8억 8000만달러) 순이었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증시 강세와 미 연방준비제도 금리인하 기대가 '평가이익 확대 → 추가 투자' 유인지로 작용했다.

    이 같은 흐름은 개인투자자에 대한 정부와 한국은행의 최근 시각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정책당국은 환율 상승 압력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서학개미의 해외투자를 지목해왔고, 심지어 양도세 강화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자본 유출의 중심에는 연기금·운용사 등 대형 투자기관이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자금 이탈이 원화 '신뢰 저하 → 추가 자금 유출 → 성장성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지난 10월 산업생산이 43년 만에 최대폭 감소하고 설비투자도 부진한 상황에서 국내 자본시장의 체력 약화가 심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정책 기조를 '규제·단기 대응'에서 '경쟁력 강화·투자 기반 복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정책 신호가 시장 신뢰를 흔드는 방향으로 흐를수록 '탈한국 자본'의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국내에서 성장성과 투자 매력을 찾기 어려우니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정책 당국이) 원화 약세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건 현실을 외면한 진단"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