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5%대 잠재성장률, 2% 밑으로 추락 … 한은 "현 추세면 0%대" 경고코리아 디스카운트·펀드 사태에 자금은 부동산·해외로 … 자본시장 신뢰 회복 과제
  • ▲ 이창용 한은 총재ⓒ뉴데일리
    ▲ 이창용 한은 총재ⓒ뉴데일리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000년대 초반 5% 수준에서 최근 2%를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현 추세가 이어지면 2040년대 0%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공식 경고가 나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한은·한국금융학회 공동 심포지엄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금융의 역할’에서 “빠른 저출생·고령화로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기업 투자와 생산성 혁신이 충분치 않았다”며 “자원이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제대로 배분되지 않은 영향도 크다”고 지적했다. 한은이 추정한 내년 잠재성장률은 1.8% 수준이다.

    첫 발표에 나선 조성욱 서울대 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잇단 펀드 사태, 이해상충 문제 등이 자본시장 신뢰를 훼손해 가계 자금이 국내 주식·펀드 대신 부동산·해외 자산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본시장이 성장·쇠퇴 산업을 가려내고 생산성이 높은 기업에 자본을 배분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면 기업 혁신 투자와 잠재성장률이 더 약해질 수 있다”며 회계·공시 투명성, 소액투자자 보호, 연기금·기관투자자의 책임투자 강화를 주문했다.

    황인도 한은 금융통화연구실장은 신용구조 개편 효과를 계량 분석했다. 43개국 자료를 토대로 민간신용 총량이 같다고 가정할 때, 가계보다 기업에 더 많은 신용이 배분된 나라일수록 장기 성장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GDP 대비 가계신용 비중을 10%포인트(90.1%→80.1%) 낮추고 같은 폭만큼 기업신용을 늘릴 경우 장기 성장률이 연 0.2%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부동산 등 비생산 부문보다 생산 부문 대출에 유리한 인센티브와 중소기업 특화 신용평가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정책에도 쓴소리가 나왔다. 최기산 한은 부연구위원은 “정책지원이 매출·고용 확대, 폐업 감소 등 ‘생존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생산성과 설비투자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이 나타났다”며 “매출·규모 중심의 보편지원이 한계기업 연명을 부추기고 민간금융을 밀어내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원 기준을 혁신역량·생산성 위주로 바꾸고 중소기업 구조조정 제도를 보완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약 0.4~0.7%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인내자본’ 확대도 과제로 제시됐다. 김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벤처투자 시장이 규모는 커졌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자금조달을 가장 큰 애로로 꼽는다고 지적했다. 짧은 펀드 만기와 기업공개(IPO) 중심 회수구조, 상환전환우선주(RCPS) 관행 탓에 회수기간이 긴 딥테크 기업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연기금·법정기금을 앵커 출자자로 한 장기 모험자본 확충, 기업개발회사(BDC)·장기자산펀드 활성화, 세컨더리 펀드와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고도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