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 땐 원화 약세·물가 압박 재연 가능성공급 확대 시나리오는 환율·금리 완화 변수과거 중동 위기처럼 ‘유가→환율→물가’ 경로 주목한은 금통위, 베네수 변수에 정책 판단 부담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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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둘러싼 지정학 리스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다시 흔들면서 원·달러 환율도 긴장 국면에 들어섰다. 중동 분쟁 때마다 반복됐던 원화 약세의 데자뷔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제 유가와 달러 흐름이 동시에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운용 여지도 한층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5.3원 오른 1447.1원으로 출발했다. 지난해 말 1420원대 후반까지 내려왔던 환율은 이후 3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달러 강세 흐름과 함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다시 환율 상단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확인된 매장량만 약 3030억 배럴에 달한다. 정권 교체 과정이 길어지거나 내전 양상으로 번질 경우 하루 약 80만 배럴 수준의 원유 수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과거 중동 분쟁 국면에서도 유가 급등은 곧바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와 달러 강세로 이어졌다.

    실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를 상회했고, 원·달러 환율은 1440원대까지 치솟았다. 2019년 사우디 아람코 피격 사태 역시 유가 급등과 함께 원화 약세 압력을 키웠다. 시장에서는 베네수엘라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유가 상승 → 무역수지 악화 → 환율 상승'이라는 경로가 재현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처럼 원유 수입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상황에서는 환율 상승이 곧바로 물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경우 연간 수입액이 수십억 달러 늘어나며 경상수지와 환율에 부담을 준다. 베네수엘라 사태 역시 유가와 함께 달러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경우 원·달러 환율은 다시 1450원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원화는 펀더멘털 대비 약세 흐름을 이어왔다. 지난해 평균 환율은 1420원대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고, 연말에는 1480원 선을 넘기며 시장 경계감을 키웠다. 최근 다소 진정됐지만 여전히 1400원대 중후반에서 등락하며 불안한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증권투자 확대와 달러 보유 성향 강화로 외환 수급이 구조적으로 빡빡해진 점도 환율 하방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 같은 환율 흐름이 금리 결정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자극해 소비자물가 상방 압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기준금리 인하 여지를 좁힌다. 오는 15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금리 동결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물가·환율·수도권 집값이라는 '세 개의 제약'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에서 통화 완화 카드를 꺼내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신년사를 통해 "환율이 한때 1400원대 후반까지 올라 시장의 경계심이 높아진 상태"라며 "환율 상승이 물가와 내수 부문에 불리하게 작용해 경기 양극화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성장률이 잠재 수준에 근접하더라도, 환율과 물가 변수로 통화정책 운용이 한층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시장에서도 이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환율이 다시 1450원 선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외환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자극받을 경우 금통위로서는 경기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 사태가 과거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처럼 단기 이벤트에 그칠지, 아니면 유가·환율 경로를 바꾸는 변수로 작용할지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베네수엘라 공습으로) 달러는 단기 강세·중기 불확실성으로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며 "미국의 군사행동에 따른 재정부담 확대와 중남미·중국·러시아의 반발을 비롯한 외교 리스크 누적이 달러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